2019년에 방송된 tvN의 예능 <고교 급식왕>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여전히 좋은 작품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작품은 백종원의 얼굴을 포스터에 앞세우고 있지만 <골목식당> <집밥 백선생> 같은 ‘백종원식 멘토링’ 예능과 거리가 멀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고등학생들이 모여 백종원 앞에서 급식 조리의 최강자를 가린다’는 취지대로, 작품은 요리에 대해 진중한 태도와 놀라운 실력을 보유한 청소년 셰프들이 난생처음 대량 조리 미션을 수행하며 겪는 시행착오를 보여주고, 독설 대신 그들의 실패를 독려하고 적확한 처방을 내리는 백종원의 모습을 통해 흐뭇한 감동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내가 <고교 급식왕>을 좋아한 진짜 이유는 기획 의도의 바깥에 있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사용하는 기숙사형 학교의 급식실. 생전 처음 보는 기계들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쌀 100㎏을 단번에 씻어내는 세미기, 포대 한 자루 분량의 양파를 몇초 만에 갈아버리는 야채분쇄기, 상자째 붓고 대충 돌리기만 해도 새하얀 알감자가 굴러 나오는 감자 탈피기, 성인 열 명이 족히 들어갈 대형 수족관 사이즈의 밥솥까지…. 그러나 기계는 어디까지나 도울 뿐. 단가와 영양의 균형 모두를 고려한 식단을 구성하고 그것을 제대로 만들어 내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본 <고교 급식왕>은 더 이상 고등학생 요리왕 배틀이 아니었다. 그것은 최소 500인분 이상의 음식을 매일, 그것도 수차례, 제한된 시간 안에 해내야 하는 ‘급식’이란 시스템에 보내는 찬사이자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실무자들에 대한 헌정이었다.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구나.” 내가 뱉은 감탄의 표현이 이상하다는 사실은 몇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불가능’에서 ‘불’을 지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간이 연료가 되어 자신을 태워야 한다는 사실도. 내가 큰 솥에서 끓여지는 카레를 보며 ‘카레가 어쩜 저렇게 많아’ 하는 이상한 감상에 젖는 동안, 급식 노동자들은 환기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실내에서 턱없이 부족한 인원으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무거운 식자재를 옮기고, 재료를 다듬고, 씻고, 조리하고 청소를 반복하며 호흡기, 폐, 관절, 근육의 질환을 얻고 있었다.
단층 촬영에 참여한 급식 노동자의 과반수의 폐가 이상 소견을 보였다는 뉴스를 집 근처 편의점에서 봤다. 아무리 둘러봐도 환풍기가 없는 점포였지만 문 앞엔 ‘치킨 맛집’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고, 매장 안은 닭을 튀기는 기름의 열기와 냄새가 가득했다.
헛기침을 하는 점원을 보며 든 걱정은 1평 남짓한 제빵실에서 하루 종일 버터를 태우고 피낭시에를 굽는 동생과 좁은 창고에서 종일 허리를 굽히고 물류작업을 하는 친구를 거쳐, 8년째 밤낮이 뒤바뀐 야간 근무를 하는 친구와 10년간 창문이 없는 지층 사무실에서 근무한 나에게로 이어졌다.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은 나와 내 주변이 속한 노동 환경의 처우를 일부러 외면하게 했고, 그렇게 지워낸 의심의 빈자리엔 ‘다들 이 정도는 감수하며 산다’는 원망스러운 자조가 안착했다.
급식과 돌봄 등을 담당하는 학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 중에는 내가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고교 급식왕>의 조리 실무자들도 있을 것이다. 순식간에 500인분의 카레와 계란찜을 만들어내던 그들은 이제 그 능력에 대한 허울 좋은 찬사 대신 안전에 대한 보장과 합리적인 대가를 요구한다. 나는 그들의 절박한 외침이 묻히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인다. 모든 위험을 사적 영역으로 회유하는 시대에, 그들의 싸움이 용기 내는 법을 모르고 갇힌 나와 내 동료의 길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몰염치한 소망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