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부수고 내치고 비워라읽음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진보·보수 가릴 것 없다. 논객의 화두가 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4월에 ‘전대 돈봉투’를 민주당이 서둘러 사과할 때까지만도, 신문 칼럼·방송 토론의 주과녁은 대통령이었다. 내세울 것 없고, 공약 파기·갈라치기·굴욕외교로 얼룩진 1년의 난타였다. 그 채찍과 진언도 잠시, 5월의 동네북은 ‘김남국 사태’로 바뀌었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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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한 대로다. 초선 김남국은 제 꾀에 무너졌다. 횡설수설로 거액의 코인 거래와 이해충돌 논란을 빚더니, 급기야 이태원 참사를 보고받던 법사위에서 뒤로 빠져 코인을 사고판 충격파를 던졌다. 돈독(毒) 올랐나 묻기 앞서 실격이다. 그러곤 도피성 탈당을 해버렸다. 자료 제출하고 징계·매각 권고를 따른다던 말은 유야무야됐고, 그 입만 쳐다보며 국회 윤리특위 제소를 미적거린 당은 ‘닭 쫓던 개’가 됐다. 사태의 8할은 김남국과 당이 키웠고, 세간의 인내심도 거기서 폭발했다.

뭐에 홀린 걸까. 일순간 집단 무기력증에 빠진 걸까. 아니다. 풀잎처럼 누우면 지나갈 바람이 아니다. 소용돌이 길 난세의 초입일 수도 있다. 국민은 진작 알아챘고, 170석 거야를 시나브로 멍들게 한 세 적폐가 동시다발했다. 먼저 위법 시비다. 4월 전대 돈봉투는 관행과 액수(50만~300만원)로, 5월 코인 폭탄은 법규 없다고 퉁치려다 된통 걸렸다. 사죄·단죄하는 공당이 못 되고, 검찰 탓·언론 탓부터 하다 ‘국민정서법’을 거스른 것이다. 사람들은 검찰이 좇는 혐의와 정치인의 태도를 같이 본다. 검찰국가가 악어라면, 민주당은 유무죄만 따지다 그 입으로 걸어들어간 꼴이다. 또 하나의 폐단은 ‘선 넘는 팬덤’이다. 상식과 공론보다, 강성 당원들의 편먹은 문자폭탄과 여론재판이 당을 휘감는다. 위법 논쟁과 팬덤 눈치 보다 당은 결정장애에 빠졌다. 그렇게 세상에서 갇힌 게 4년 전 ‘조국 대전’이었음을 벌써 잊었다.

민주당은 뼈아픈 오명도 썼다. 가치가 아닌 이익 추구 집단으로…. 김대중의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노무현의 ‘반칙·특권 없는 세상’ 깃발을 든 당이 맞나. ‘차떼기’한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의 10분의 1이 넘은 걸 고개 숙이고, ‘반평화’적인 이라크 파병을 이해 구하고, 군부·재벌·사학·조중동·극우기독교 카르텔에 맞서던 그 당인가. 쇄신의총에선 “깨끗한 척하지 말자”는 말까지 나왔단다. 동업자끼리 도덕불감증에 걸린 당엔 그 옛날 “내 아이에게 이런 나라 물려줄 수 없다”며 부른 ‘타는 목마름’이 없다. 그런 생각으로 광주(5·18)와 봉하마을(노무현 14주기)에 몰려갔단 말인가.

1년 전이다. 2022년 5월 대선 패장 이재명은 “죄인”이고, “상대가 원치 않는 때·장소·방법으로 싸우겠다”며 정치에 복귀했다. 석 달 뒤 당대표 되어선 “잘하기 경쟁”을 하고 싶고,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 유능하고 강하고 혁신·통합된 뉴민주당이 됐는가. 겸연쩍을 게다. 여권의 집요한 비토·수사가 화나겠지만, 적대적 공생의 피로감은 거야도 깨지 못했다. ‘사이다’ 이재명은 근래 ‘고구마’ 소릴 듣는다. 권한의 크기와 책임은 비례한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이 미지근한 시간은 이재명 편일까. 결기·매력·감동을 잃으면, 선거를 지면, 당도 대권 주자도 생불여사(生不如死)일 뿐이다.

정부·여당이 잘하면 야당에 기회가 없는 법이다. 반대로, 야당이 강하면 공직사회도 대통령만 보지 않는다. 총선 1년 앞 대한민국은 어느 쪽도 아니다. 대통령은 2년차도 전 정부·야당 탓으로 열었다. ‘정권 심판 대 거야 심판’으로 가고 싶은 걸 게다. 저리 실정이, 등 돌린 청년이, 사과 못 받은 일이 많은데도 제1야당은 제 코가 석 자다. 과거에도, 선거 지고 내홍이 극에 달한 민주당이 있었다. 2015년 문재인 대표는 당헌까지 확 뜯어고친 김상곤 혁신위를 띄우고, 이듬해 총선 바통도 김종인 비대위에 넘겼다. ‘정서적 내전’은 개혁적인 합의로, 시스템으로 넘어야 한다. 그 멍에가 당과 이재명에 얹어졌다.

민주당은 대위기다. 전통적인 40대·호남·진보 지지축도, 대선 후 돌아온 수도권·2030·중도 지지축도 흔들린다. 좋아서 필요해서가 아닌 상대가 싫어서, 찍고 싶어서가 아니라 찍어주는 정당이 된 징표일 게다. 정도는 따로 없다. 민주당은 지레 눕고 소낙비 피할 생각 말아야 한다. 정치 바꾸고, 삶의 위기에 답하고, 아우성치는 이들과 손잡는 ‘혁신·민생·수권’ 정당으로 바로 서야 한다. 위도 아래도 예외 없다. 처음 해보는 것처럼 부수고, 안 볼 것처럼 내치고, 공심(公心)만 보이게 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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