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이가 흑인이라고?읽음

박선화 한신대 교수

“뭐라고? 춘향이 역할을 흑인 배우가 맡는다고? 그런데 이몽룡은 한국인이 하고?”

한국의 전통설화로 사랑받아 온 춘향전이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주연 배우가 다른 인종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의 연기를 금발의 도자기 인형 같은 러시아 배우가 맡는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한국인이라면 어색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박선화 한신대 교수

24일 개봉하는 디즈니의 실사영화 <인어공주>. 그 주인공에 캐스팅된 흑인 배우에 대한 논란이 그러했다. 어린 시절 선망하던 동화 속 주인공이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떤 이들에겐 분명 “흑인 춘향이나 백인 심청”만큼 충격일 것이라 반발도 이해가 간다. 반면 디즈니의 결단을 옹호하는 이들도 많다. 바다를 자유롭게 오가는 인어인데 피부색이 왜 중요하냐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이번 작품은 안데르센이 살던 북해 주변의 음산한 바다가 아닌 화사한 카리브해 배경이라 유색인이 자연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불편함의 많은 부분은 습관과 경험의 문제이긴 하다. 성악가 조수미씨는 베르디나 모차르트의 작품 같은 서양 전통 오페라 주인공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한국의 연극 무대엔 셰익스피어나 체호프 같은 이들의 작품 속 인물을 연기하는 무수한 배우들이 있다. 심청이건 이몽룡이건 동양인만 해야 할 이유도 없고, 더욱 다양해지는 것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같은 생각을 가진 독일 배우가 외국인의 시각으로 각색한 춘향전을 만들고 주연도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방자 역은 같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료이자 <오징어 게임>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인도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가 맡았다고 한다. 순혈주의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더욱 고민할 지점들은 있다. 외국인이 맡은 춘향이처럼 단순히 연기자의 생물학적 특징이 바뀌는 것과, 춘향이가 원래 흑인이었다는 설정은 분명 다른 문제라서다. 알고보니 장희빈이 베네수엘라 미녀였다는 설정은 창작의 자유를 넘어 당혹스러움을 안겨줄 수 있다. 전자와 후자의 경계가 모호할수록 논란은 커진다. 실제로 역사 속 실존 인물을 다루는 다큐나 영국 전통 왕실 귀족마저 흑인으로 설정된 드라마들이 계속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올라오며 화제성과 함께 역사·문화 왜곡 논란 등을 빚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모든 중요한 역할을 백인이 독점해 ‘화이트 워싱’이라 불렸던 과거를 반성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저 백인을 흑인으로 바꾸는 ‘블랙 워싱’으로 손쉽게 문제를 회피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대개의 주인공들은 피부색만 다소 어두워졌을 뿐 흑인 특유의 문화적·생물학적 개성은 보이지 않을 때가 많고, 여성은 더욱 그렇다. 이번 논란도 피부색보다는 새로운 인어공주의 외모에 유색인 특징이 많이 보이는 것에 대한 어색함에 가까워 보인다. 백인 미남·미녀 위주의 세계관과 외모관에 익숙해진 이유일 것이다.

모든 문화엔 나름의 맥락과 정서가 있고 그 문화권 사람들의 추억과 향수도 있다. 새로운 상상력과 해석, 문화적 다양성, 정치적 올바름도 중요하지만, 외형만 바꾸는 변화라면 그저 시장을 넓히고 비난을 막기 위한 가식에 그칠 수도 있다. 일본 왕이나 총리가 한국인이라는 설정을 한다 해서 일제의 과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반성과 함께 고유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우선인 것과 같다.

흑인 에리얼을 통해 자부심을 갖게 되는 흑인 어린이가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뮬란이나 모아나, 코코나 슈렉처럼 다양한 문화를 발굴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노력들이 더욱 필요할 것 같다. 정작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백인 예수가 아닐까. 논란과 상관없이 주인공 핼리 베일리를 닮은 새로운 인어공주 인형은 아마존 인형판매 1위를 기록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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