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먹고 사는 학교 급식실의 ‘비극’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엄마는 ‘다른 사람이 차려준 밥’을 사 먹는 걸 늘 아까워했다. “찬을 이렇게 조금 내고 이 돈을 받는다니, 내가 만들면 훨씬 좋은 재료로 더 맛있게 할 수 있는데.” 말하지 못했지만 생각했다. ‘엄마 밥에는 엄마 노동력에 대한 대가가 포함 안 돼 있으니까요.’ 엄마의 노동은 늘 공짜였다. 계산이 되지 않으니 엄마 음식은 사서 먹는 음식보다 저렴한 게 당연했다. 가부장제는 그렇게 수많은 엄마들의 노동을 공짜로 갈아 썼다. ‘학교 급식’이 생겨나며 엄마들은 겨우 도시락 싸는 일에서 자유로워졌다. 중식, 석식 2개의 도시락을 싸다가 해방됐다고 기뻐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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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공짜 노동은 학교 급식 조리사의 노동이 되면서 ‘최저임금’을 겨우 맞추는 값이 됐다. 중장년 여성들의 일은 ‘반찬값’ 벌러 나온 노동으로 치부되고 여성이 집에서 맡아왔던 가사노동의 연장선으로 이해되며 저평가됐다. 이들은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열악한 임금에 대해 말할 ‘힘’도 없었다. 2017년 한 국회의원의 저열한 인식은 그 결과였다.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것 아니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이 돼야 하는 거냐?” 100인분 이상의 밥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기득권이 수많은 학생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사람들을 ‘밥하는 아줌마’로 폄하하고 ‘따뜻한 밥을 만들어 먹이는 일’을 후려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밥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 지위, 임금에 대한 재평가가 왜 중요한지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4년 후 그 기대는 손쉽게 흩어졌다. 2021년 2월 ‘학교에서 밥하는 아줌마들’의 폐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처음 인정되면서다. 지금까지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사망한 사람만 5명이다. 주차장 옆에 급식실이 있는 탓에 매연이 음식에 섞일까 문을 열 수 없고, 아이들 교실과 가까워 음식 냄새가 날 수 있어서 문을 열 수 없으며, 아예 반지하여서 환기가 잘 안 돼 조리사들은 ‘조리흄’을 그대로 들이마셨다. 17개 시·도교육청 급식 노동자 4만2077명에 대한 폐 검진 결과 1만3653명(32.4%)에게 이상소견이 나타났고 폐암 의심 노동자는 전국에 338명에 이른다.

2021년 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폐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경우가 총 79건인데 그중 54건이 학교에서 발생했다. 왜 학교 급식실에서 산재가 더 많이 발생했을까. “오래된 학교들은 급식실 고려를 안 하고 지었는데 애들 밥은 줘야 하니까 건물 아무 곳에나 욱여넣은 거죠.” 1인당 식수 인원도 대체로 100명이 넘었다. 조리실에 후드 장치가 없는 경우도 다수여서 창문을 열고 선풍기로 환기시키는 정도로 버텨야 했다. 시행 12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무상급식은 급식 조리사들의 노동만이 아니라 건강마저 갈아넣어 유지되고 있었다.

누군가의 엄마들이었을 급식 조리사들은 ‘요령’도 피울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초창기에는 진짜 경조사 아니면 아무도 놀지 못했어요. 내가 놀면 다른 엄마한테 피해가 가니까. 그래서 나 진짜 개근했어요, 개근.” 지난 2월 ‘학교 급식 종사자 폐암 산재, 해법 모색을 위한 토론회’ 발제문에 담긴 산재 당사자의 목소리다. 다른 엄마한테 피해가 갈까봐 쉬는 일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최저임금을 겨우 맞추는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했을 중년의 여성 노동자의 삶의 결과가 ‘폐암’이 됐다.

학교 급식실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이 더욱 처참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관계자는 말했다. “이제 대공장 급식실의 환경은 많이 좋아졌어요. 정규직인 경우도 많고요.”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학교 급식실이 민간 회사의 급식 공간보다 열악하다는 것을, 자신의 노동을 갈아넣던 노동자들이 병을 얻은 공간이 ‘학교’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왜 이 사회는 국가의 필수 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밖에 주지 않고 그들이 안전한 환경, 안정된 지위를 요구하면 ‘욕심’이라고 말하는가. 우리의 세금이 이렇게밖에 배분되지 못할 정도로 한국은 가난한가.

‘폐암’이라는 결과는 이제 더 이상 이들의 희생으로 학교 급식을 유지할 수 없다는 신호다. 갈 길은 멀다. 산재가 발생한 학교 급식실인데도 아직 환기시설이 교체되지 않았고, ‘지옥의 급식실’이 이슈화된 후 열악한 급식실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신규 채용이 어려워 급식실 인력 공백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 고용노동부, 교육청 의사결정자들은 기획재정부 핑계는 그만 대고 서둘러야 한다. 이상소견 있는 노동자 1만3653명, 폐암 의심 노동자 338명을 구할 생각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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