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인류애’라고 해라

이정호 산업부 차장

국익(國益)의 뜻은 ‘나라의 이익’이다. ‘나라’는 뭘까. 사전에는 “영토와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을 통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진 집단”이라고 쓰여 있다. 요컨대 국민과 영토, 주권이라는 3요소로 나라는 이뤄진다. 나라와 국익 얘기를 꺼내는 것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생긴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려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어서다.

이정호 산업부 차장

이정호 산업부 차장

오염수는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국익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오염수를 방류하지 않으면 한국 국익이 보존될 뿐이고, 방류하면 국익은 훼손된다. 여기서 말하는 국익은 ‘국민의 건강’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오염수 방류는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다.

반면 미량의 방사능은 국민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 설사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방류해도 국익은 훼손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엄청나게 많은 태평양 바닷물에 섞일 오염수를 두고 호들갑을 떨지 말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1977년 제기한 ‘알라라(ALARA) 원칙’을 보면 이런 주장에 의문이 생긴다.

알라라 원칙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원자력 규제기관이 따르는 국제 규칙이다. 알라라 원칙의 핵심은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한 피폭량을 낮게 유지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피할 수 있는 방사능은 무조건 피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꼭 필요한 상황을 빼놓고는 미량이라고 해서 쪼여도 ‘괜찮은’ 방사능 같은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오염수에 대해 큰 문제 없을 것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한·일관계 개선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핵이나 경제 문제에서 협력하려면 일본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오염수 방류를 반대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미국은 대중국 전략 차원에서 한·일관계의 복원을 원한다.

하지만 이런 외교적인 목적이 달성된 뒤에도 한번 방류가 시작된 오염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바다로 나갈 것이라는 게 문제다. 일본 정부 계획으로도 오염수는 30년간 방류된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금세기 말까지도 방류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2023년의 국제 정세에 대응하려는 현세대가 정책 결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한 미래세대에게 “방사능이 미량 섞인 바닷물은 건강에 큰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고 말할 권리가 있는지 의문이다.

오염수 방류가 해도 될 법한 일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괴담을 퍼뜨리지 말라”고 할 게 아니다. 차라리 일본에 ‘인류애’를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낫다. 일본이 곤란한 일을 겪고 있으니 오염수 방류를 이해해 주자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명쾌하다. 그게 ‘괴담’이란 표현을 써가며 오염수 방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보다 바람직하다.

나라의 3요소는 국민과 영토, 주권이라고 했다. 오염수가 ‘국민’의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발생했다. 영해 개념을 포괄하는 ‘영토’가 방사성 물질을 품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주권’을 위임받은 정부가 “이 정도 방사능은 괜찮다”고 말하는 게 온당한지 돌이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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