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 단단한 어른, 몸만 큰 어린아이

이은희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내면이 단단한 어른, 몸만 큰 어린아이

올해 초 ‘제1회 미래와 인구전략 포럼’에서는 만 18세 이상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완전한 성인임을 자각하는 정도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 결과 성인기를 코앞에 둔 18세의 경우 10%, 법적으로 완벽한 성인인 20세와 25세의 경우 각각 24%와 35%만이 자신이 성인임을 완벽하게 자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더욱 놀라운 것은 30세가 되어서도 그 비율이 56%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법적 성인으로 인정받고 10년이 지나도 절반에 달하는 이들이 스스로가 성인이라고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미 육체적으로는 충분히 성숙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스스로가 아직 ‘덜 자란’ 상태라고 여기는 것인가.

인간의 성장 과정은 연속적이나, 발달은 단계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린아이의 몸은 시나브로 어른의 몸으로 바뀌지만, 그 내면까지 저절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과도기를 거쳐야 한다. 이 시기를 얼마나 충실하게 거쳤는지에 따라 내면이 단단한 어른이 될지, 몸만 큰 어린아이로 남을지가 결정되는데, 과도기의 특성이 다소 과격하다. 무모하고 저돌적이며, 무신경하고 이기적이면서도, 예민하고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이러한 특성들이 왜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변모하는 중요한 시기의 특징으로 자리매김되었을까.

진화생물학자 바버라 호로위츠는 과학저널리스트인 캐스린 바워스와 함께 저술한 <와일드 후드>를 통해 성체가 되기 전에 겪는 좌충우돌의 성장 진통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펭귄과 여우원숭이와 해달과 박쥐와 앵무새들이 천적 근처에서 일부러 얼쩡거리거나 별것 아닌 작은 신호에 호들갑을 떠는 거의 유일한 시기가 바로 이때인 것이다. 이에 저자들은 한 개체가 오롯이 성장해 성체로서의 삶을 독립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4가지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성체가 되기 전 시기는 이 과제를 처음 맞닥뜨리는 시기라 낯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롯한 성체가 되기 위해 습득해야 하는 4가지 과제는 안전, 지위, 성적 소통, 자립이다. 성체는 무릇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보고 지킬 수 있어야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지위에 적응해 제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성적 욕구를 적절히 통제하면서 상대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자원을 스스로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린 개체와 성체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이 4가지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책임으로부터 면제되지만, 10대 혹은 ‘준성년기’에 들어선 개체들에게는 더 이상 이런 유예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10대는 충동적이고 무모하다. 눈앞에 놓인 과제들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다. 이때 주어진 과제를 피하려는 이와 어떻게든 맞부딪쳐 해결하려는 개체가 있다면, 다소 위험성은 있어도 후자 쪽이 성공적인 어른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준성체에게 있어 무모함이란 불확실한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의 극단적인 표현형이며, 성체로서의 성공적인 이행을 위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투자 전략인 셈이다. 또한 그래서 10대는 예민하고 음울하다. 모든 신호가 불확실하기에, 모든 신호에 날을 세워 수신하고 일단은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회피하는 것이 생존에 조금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10대의 좌충우돌과 극단성은 개인의 일시적 안녕에는 부정적이지만, 집단의 장기적 존속에는 오히려 유리한 행동일 수 있다. 그래서 이를 충분히 겪어내는 과정은 더 단단한 내면을 지닌 어른으로 성장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이 스스로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충분히 부딪치고, 충분히 좌절하고 다시 회복할 때까지 너그럽게 기다려주는 데 인색하다. 그렇게 성인기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연습은 부족한 채, 몸만 자란 이들은 스스로를 어른으로 인식하는 것이 낯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성숙한 어른들의 수가 줄어든 사회가 과연 성숙한 사회의 풍모를 유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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