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에 ‘마녀’를 불태워 죽인 것처럼 이 시대에도 화형식이 거행된다. 바로 판매되지 않은 멀쩡한 새 옷들이다. 2018년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브랜드 가치를 지키려 미판매 재고를 소각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재고를 관리하는 운영비가 들지 않을뿐더러 소각하면 회계상 손실로 처리돼 세금까지 줄기 때문이다. 동네 구멍가게이긴 하지만 나도 사장 반열에 들어서 보니,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경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장이고 나발이고, 새 옷을 태워 없애는 길이 최선이라면 그런 자본주의는 망하거나 고쳐 써야 하지 않을까. 패션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최대 10%를 차지하고, 이는 해상이나 항공 교통보다 많다. 섬유는 알루미늄과 함께 재료 단위당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단, 사용 후 알루미늄은 80% 이상 재활용되지만 섬유는 5% 이하만 재활용된다. 전체 의류 중 60%가 합성섬유라서 재고를 태우거나 묻으면 미세 플라스틱과 유해물질이 나온다. 패션산업에서 전 세계 폐수의 20%가 발생하고, 섬유 1t 생산에 평균 200t의 물이 필요하다. 전 세계 관개용수의 약 3%가 의류산업에 쓰이고, 이 중 95%가 면화 생산에 들어간다. 패션산업은 1100명 이상 사망한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의류 공장’ 붕괴 사고처럼 저임금의 열악한 일터이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빽빽한 옷장을 뒤지며 ‘왜 이렇게 입을 옷이 없어’ 한탄하다 ‘쇼핑하라, 마치 옷장에 옷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쇼핑몰을 클릭한다. 패스트패션이 부흥한 2000년 이후 의류 판매량은 2배 증가했고, 입는 횟수는 절반으로 줄었다. 그 결과 2년 동안 한 번도 안 입고 쟁여둔 옷이 각 옷장마다 21%라고 한다. ‘다시입다연구소’가 입지 않는 옷을 교환하는 모임을 ‘21% 파티’로 정한 이유다.
새 옷을 사지 않고 헌 옷을 수선하거나 교환하고 ‘당근’이나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재사용 의류를 선택하면 어떨까. 내가 해봐서 아는데 통장 잔액에도 좋고 이미 한 번은 선택받은 옷이라 스타일 좋은 옷들이 널려 있다. 얼마 전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새 가방과 똑같은 모델의 중고를 80% 할인해 재판매하는 것을 발견했다. ‘원웨어(wornwear)’라는 재사용 의류 캠페인으로 매장에서 수선도 해준다. ‘21% 파티’에 따르면 그 옷을 안 입는 이유를 물어보고 수선했을 때 약 90%가 다시 입게 됐다고 한다. 최근 프랑스는 옷을 수선해 입는 사람에게 최대 2만5000원(한화)의 수선비를 지원한다. 싼 옷을 일회용처럼 입고 버리는 문화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턱도 없다. 독일은 의류 폐기물의 처리를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법을 개정했고, 프랑스는 미판매 재고의 소각과 매립을 금지했다. 이를 어길 경우 개인 430만원, 기업 2200만원의 벌금을 반복해 부과할 수 있다. 국내의 경우 자원재활용법 위반 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나온다. 의류 폐기물은 이마저도 적용되지 않지만 말이다. 벨기에는 의류를 기부할 경우 부가가치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준다. 우리도 재고 소각은 금지하고 현재 의류에 적용되지 않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나 폐기물처리분담금을 적용하는 등 패션 기업을 자원순환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
옷값은 더 저렴해지고 욕망은 한도 끝도 없지만 그 옷을 입을 몸은 하나밖에 없다. 지구도 하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