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명예, 압수수색 아닌 선정으로 지켜야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대통령의 명예를 위해 언론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검찰은 최근 ‘김만배 녹취록’을 대선 직전 보도한 뉴스타파와 이를 인용한 JTBC 및 해당사 기자들을 압수 수색했다. KBS와 MBC 기자들도 뉴스타파를 인용해 보도한 일로 검찰에 송치됐다. 앞서 대통령실은 관저 선정 과정의 역술인 개입 의혹을 보도했던 뉴스토마토 기자들을 고발한 바 있다. MBC는 지난해 ‘바이든/날리면’ 보도로 당시 사장, 보도국장, 기자가 고발된 상태다. 모두가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다.

그간 일반적 발언이 아닌 언론 보도를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문제 삼은 경우는 거의 없었고, 성공적이지도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몇개 신문에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걸었다. 언론 대부분이 이를 비판했고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로 연기하겠다며 물러섰다. 임기 중 민사가 아닌 형사로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려던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현 윤석열 정권은 이례적으로 언론을 상대로 한 형사적 절차는 물론 압수수색까지 쉽게 벌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 민사소송에도 적극 반대했던 일부 신문들까지 이 정권 아래에선 동조하거나 침묵하고 있다.

명예훼손죄는 없애는 것이 세계적 추세며 있더라도 사문화되고 있다. 특히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죄 적용은 제한적이다. 권력이 클수록 비판받아야 하고, 공표한 말이 완벽한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처벌한다면 권력 감시가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여전히 명예훼손죄가 있지만, 법원은 대통령은 물론 고위 선출직 출마자를 포함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 책임을 웬만하면 묻지 않는 방향으로 판결해왔다.

한국에서 명예훼손은 친고죄가 아니다. 이 때문에 본인은 빠지고 소속 정당이나 관변단체 등 제3자가 고발에 나선다. ‘반의사불벌’ 원칙에 따라 대통령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히면 이런 소동은 즉시 끝날 것이다. 그런데도 모른 척하며 침묵하는 대통령은 ‘미필적 고의로’ 사실상 처벌을 원하는 셈이다. 그러니 검경이 나서 압수수색 등으로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엔 느닷없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까지 나섰다. 후일 무죄판결이 날 것은 상관없다. 현재의 정치적 목적만 달성하면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전략적 봉쇄소송이다.

이런 식의 언론 길들이기는 도리어 자정 기회도 놓치게 한다. 대통령 측이 문제 제기에서 그친다면 공론장의 논박으로 사안의 본질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번 경우도 이해 당사자의 말로만 이뤄진 증거를 언론이 어떻게 확인하고 어떤 식으로 보도했는지를 성찰해 볼 기회다. 하지만 지금 논의는 명예훼손이니 아니니, 압수수색이 옳으니 그르니 등의 틀에 갇히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언론은 이번 기회에 그간의 관행을 돌아보고 저널리즘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 권력은 작은 실수를 기다린다. 2003년 영국 정부는 영국의 이라크 참전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던 BBC를 단 한 건의 보도에서 작은 흠을 찾아 되치기했다. 결국, 이사장과 사장, 그리고 보도한 기자가 BBC를 떠나야 했다. 물론 영국 정부는 BBC와 기자들을 압수수색하거나 형사 고발하지는 않았다.

공표된 말은 말한 내용 자체로 옳고 그름을 논박해야 한다. 압수수색 등으로 말한 이의 악의를 찾아내 벌하려는 것은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면 반론해 바로잡을 수 있는 권한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크다. 그가 부르면 기자들은 바로 모인다. 그런데도 자기 개인의 일에 휘하의 공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명예가 훼손된 한국 사회 시민 중 그것을 회복해줘야 할 제일 마지막 순위가 대통령일 것이다. 대통령의 명예는 선정(善政)으로 지켜야 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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