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주식 파킹(제3자에게 지분을 맡기는 행위)’ 의혹에 휩싸인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쓰려던 참이었다. 관련 기사와 자료를 살필수록 허망해졌다. 그럼, 12·12 쿠데타는 “나라를 구하러 나온” 것이고 이완용(의 친일행각)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여 의혹에다 ‘사진 찍지 마! XX 찍지 마!’로 유명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공직후보자 개개인에게 따진다고 달라질 건 없다. 묻기로 했다. 구글링만 해도 나올 의혹을 몰랐거나 눈감은 채 ‘1차 검증’을 마쳤다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그 책임자 한동훈 장관에게.
윤석열 정부의 인사 추천·검증은 ‘①대통령실 인사기획관실의 추천→②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1차 검증→③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2차 검증’ 순으로 이뤄진다. ①의 복두규 인사기획관·이원모 인사비서관, ②의 한 장관, ③의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모두 검찰 출신이다. ‘끼리끼리’ 크로스체크가 될 리 없다는 문제는 일단 제쳐두자.
1차 검증을 담당한 법무부는 김·신·유 후보자의 과거 행적·재산에 대해 몰랐나, 아니면 알고도 통과시켰나. 몰랐다 해도 문제지만, 알고 통과시켰다면 더 큰 문제다. 주식을 시누이에게 맡겨도, 쿠데타를 미화해도 장관 자격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인사검증 업무에 대해 민정수석 등에게 질문해본 적 있나. 없을 것이다. 이제 이게 가능해지는 거다.” 한 장관은 지난해 인사정보관리단이 창설될 무렵 이렇게 말했다. 국회와 감사원, 언론의 감시를 받게 돼 투명성이 강화된다는 취지였다. 출범 이후엔 “(인사검증과 관련해) 국민적 지탄이 커지면 제가 다른 종류의 책임을 져야 될 상황도 생기지 않겠나”라고도 했다.
올해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 학교폭력 문제로 낙마하자 180도 달라졌다. 법무부는 더불어민주당 조사단의 인사정보관리단 방문 요청에 응답하긴커녕 사무실 소재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한 장관은 “정무적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책임지겠다는 뜻이냐’는 질문엔 “아니다”라고 잘랐다. 책임감은 느끼지만 책임은 안 지고, 인사검증 권한은 챙기되 검증실패 책임은 나몰라라 하겠다니. ‘꽃보직’이 따로 없다.
신호는 초기부터 감지됐다. 인사정보관리단이 출범 이후 최초로 검증한 공직 후보자는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였다. 송 후보자는 ‘제자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고, 윤 후보자는 스쿨존 과속을 포함해 8차례 교통법규 위반으로 과태료를 낸 사실이 드러났다. 송 후보자는 지명 엿새 만에 사퇴했다. 첫 검증부터 낙제점이었지만, 한 장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치적 리더의 책무 가운데 대체불가능한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저서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목표의 언어화’와 ‘의사결정’이다. 목표의 언어화란, 리더가 집단의 목표를 구성원들에게 분명하게 기술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법무부라는 주요 부처의 리더이자 윤석열 정권의 핵심 관료로서, 한 장관에겐 언어화할 수 있는 목표가 있나. 취임 1년이 넘었지만 주권자들은 잘 알지 못한다. 있다면 혹여 제1야당을 조롱해 ‘열받게’ 만드는 일인가.
한 장관은 국회에 출석할 때마다 출입구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한다. 내용은 다양하고 태도는 거침없다. 기자들은 이를 ‘국회스테핑’(국회+도어스테핑)이라 부른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도 빈틈없다. 주디스 버틀러 미국 UC버클리 석좌교수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생활동반자법은 시기상조라는) 한동훈 장관, 피할 수 없는 일을 피하려 한다’는 취지로 언급하자, 반박문을 법무부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렸다. 광복절인 8월 15일 밤 9시12분이었다.
“저는(…) 국민 설득할 자신 있으면 정면으로 논의하자는 말씀을 더불어민주당에 드린 바 있다. 그러니, 경향신문이 민주당에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 부처 공식 계정에서 ‘저는’ 이란 표현도 낯설고, 언론 보도를 반박하며 야당을 언급한 것도 이상하다. 무엇보다 법무부 장관이 휴일 한밤중에 입장을 밝혀야 할 만큼 화급한 사안은 아닌 것 같다.
한 장관이 야당 조롱과 국회스테핑과 ‘셀럽 놀이’에 열중하는 사이, 인사검증 같은 본업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당장 장관직을 버리고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편이 낫겠다. 윤석열 대통령의 ‘윤허’가 아직 떨어지지 않아서 못 하는 건가.
사족. 김행 후보자에게도 한 말씀 드린다. 정순신 변호사 낙마 이후 김 후보자는 공개적으로 말했다. “만약에 인사청문회가 있었다면 본인(정순신)이 거절했을 거예요. 본인이 본인을 가장 잘 알지 않습니까”(2월28일 KBC 여의도초대석).
김 후보자도, 본인이 본인을 가장 잘 알지 않나. ‘드라마틱’하게 ‘엑시트(exit·퇴장)’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