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솥 압력은 솥 안에서 낮출 수 없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역대 모든 정부가 겉으로는 교육 개혁을 외쳤지만 실제로 뇌관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들이 뒤집어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윤석열 정부 역시 이 문제에 미온적이다. 출범 이후 1년 반을 넘기고 있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속내도 알 수 없다. 얼마 전 출범 1주년을 맞은 국가교육위원회의 토론회가 느슨하고 한가한 토론들로 채워졌던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교육문제는 난제임에 분명하지만 결코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이 문제가 반세기 넘게 방치된 가장 큰 이유가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부모, 대학, 국가의 각자 역할이 제대로 구획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잉경쟁을 뚫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본인과 부모의 몫이다. 경쟁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반수생 숫자를 줄이며, 대학의 교육가치를 높이는 것은 대학이 할 일이다. 반면, 여기에서 야기되는 과잉경쟁을 완화하고, 교육 생태계를 확대하며, 기회의 폭을 넓히는 일은 정부와 사회의 몫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정시나 수시 등 주로 대학이 결정해야 할 미시정책에 간섭하는 일을 ‘교육정책’ 본연의 임무라고 착각해왔다. 국가 정책은 파이를 분배하는 것보다 파이를 확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즉, 좁은 골목의 대장 역할에서 벗어나 골목을 넓히는 일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의사 수입이 많아 너도 나도 의대에 가려고 한다면 국가는 의대 입시를 공정하게 하려는 노력보다 오히려 의사 수를 늘리고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 인공지능(AI)과 정보기술(IT) 산업이 전도유망하다면 컴퓨터공학과의 입시를 공정하게 하는 데 집착할 게 아니라 대학 내 전공 간 벽을 허물고 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해 노동시장에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문·예술 등 일부 학과 출신자들의 소득이 다른 직종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낮아 대학 지원율이 떨어진다면 대학의 입학 정원을 보장해주는 정책을 넘어 사회적으로 문인이나 예술가들의 직업 지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동시장과 창작시장 지원을 협의해야 한다. 수도권 몇 개 대학이 국가 전체의 인재를 싹쓸이하고 있다면 권역별·지역 간 균형 입학의 기회를 더욱 보장해 주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교육생태계 차원을 넘어 그것을 감싸고 있는 사회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런 변화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하라고 교육부 장관을 사회부총리로 보임하는 것이다. 사회부총리는 경제부처를 설득하고, 고용 관련 부처들과 대화하며, 전문직 집단들과 타협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의사 집단을 설득하고, 기득권을 가진 교수들과 대화하며, 학생들을 만나야 한다. 필요하다면 학교나 대학의 관행을 해체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대토론을 위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해보지도 않고 그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들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것이다.

끓는 솥의 압력을 솥 안에서 낮출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과잉입시의 압력은 교육체계 안에서 낮춰질 수 없다. 그 일은 소수가 독점한 교육 열매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교육은 ‘사회적 공동재’이며 그 열매는 결코 소수가 독점해서는 안 된다. 교육은 소수가 ‘잭팟’을 터뜨릴 로또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일이 아니다.

현 단계의 대입 제도는 부유층과 중상류층에 유리한 제도이지만 기이하게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속에서 자신의 자식만은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계급 상승이 쉽지 않은 중하층 국민들에게 교육은 유일하게 남은 계급상승의 통로로 비춰진다. 그래서 이런 과잉경쟁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남겨줄 것이라고는 좋은 대학이란 희망밖에 딱히 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야 한다. 이건 오히려 내 노후를 망치고 아이들을 지옥학습으로 떠밀면서 수능에서 상위 성취도 아이들의 상대점수를 깔아주는 허상일 뿐이다.

확대되지 않는 제한된 기회는 언제나 과잉경쟁과 결과의 소수 독점이란 현상을 만든다. 그 중심에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능력주의)’가 있다. 이런 허상을 통과하면서 성장한 아이들은 더 이상 사회 전체의 미래상을 보지 않는다. 당장 자신이 성취해 온 개인적 성과와 지위 유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사회는 더욱 보수화돼 가고, 사회 양극화는 거의 신분제도처럼 굳어진다. 그래서 더욱 사회적으로 큰 결단과 이행이 필요하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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