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팔레스타인과 한반도는 제국주의가 훑고 간 역사적 공통점이 있다. 전자는 오스만제국의 패망 이후 국제연맹을 통해 또 다른 제국인 영국의 위임통치가 있었고, 후자는 아시아 각국을 침략한 일본제국의 식민지 중 하나였다. 1948년에 이스라엘과 남한은 각각 단독으로 정권을 수립했다. 전쟁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고 여전히 그 연장선에 있다. 전쟁국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양국은 최첨단 무기로 자신을 고슴도치처럼 무장하고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양 지역은 같은 운명에 처해 있음을 느낀다.

가자지구 무장단체 하마스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촉발된 현재의 이·팔 전쟁은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며, 중동은 물론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지도 모른다. 총과 미사일로 숱한 생목숨이 날아가는 생생한 현실은 몸서리치는 인간의 야만성을 여실히 폭로한다. 과연 신은 있는가. 야훼든 알라든 분명 신은 하나다. 그렇다면 이토록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상대를 무화시키겠다는, 그의 피조물들의 허망한 의지를 왜 거둬들이지 않는 것일까. 인간 모두를 향한 신의 공평한 자비가 있기나 한 것일까.

신은 무한 책임이 있다. 2000년 전 로마의 침공으로 멸망한 나라의 유민들이 다시 뭉쳐 신이 정한 자신들의 땅을 되찾겠다는 시온주의가 이 분쟁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영국은 오스만제국하의 아랍 독립을 위한 맥마흔 선언을 깨고, 1917년 시온주의자들에게 국가건설을 약속한 밸푸어 선언을 하며 양쪽을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1922년 영국 식민부 장관 윈스턴 처칠은 이 정책을 지지하며 유대이민을 장려했다. 1947년 유엔이 인구 30%인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지역 55%를 넘기는 분할안을 제시하자, 다음해 시온주의 민병대가 원주민 수천명을 학살, 수십만명을 추방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이스라엘 국회가 1950년 제정한 ‘부재자 재산법’은 흩어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유대인들이 차지하게 하고 반환 근거를 없애버렸다. 또한 ‘귀환법’을 제정해 세계 각지의 유대인 혈통과 개종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팔레스타인인들을 배타적으로 대우했다. 네 차례 중동 전쟁과 두 차례 민중봉기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신의 정당(헤즈볼라)·이슬람저항운동(하마스) 등의 무장단체들이 탄생하고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대인의 민족고향’ 건설을 주장하는 시온주의는 민족주의와 깊이 결합되어 있다. 세계 각지에서 디아스포라를 이룬 유대인들은 상업과 금융 등에서 생존방식을 터득하며 지역에 동화되어 있었다. 기독교인들을 필두로 한 반유대주의에 의한 핍박은 오히려 그들의 생존력을 더욱 강하게 했다. 그러나 베네딕트 앤더슨이 “시오니즘의 출현과 이스라엘 탄생의 의미는 전자는 고대의 종교공동체를 그 지역에 있는 다른 민족들 중의 한 민족으로 재상상할 수 있게 하며, 후자는 유랑하는 신도들을 지역적 애국자로 연금술처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상상의 공동체> 윤형숙 옮김)라고 말하듯 시온주의는 상상의 민족공동체를 실현하자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온주의자들은 생존을 위해 중동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이권을 매개로 영국과 미국의 첨병 역할을 자임했다. 문제는 기만적인 영국의 약속 이후에도 약자로 몰린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장과 처지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두 발 달린 짐승들’을 지구상에서 없애는 것이 목표였다. 1917년부터 지금까지 영국·프랑스·러시아·미국 등의 강대국을 등에 업고 분쟁 속에서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살상했다. 영토 확장의 과실로 ‘인간 짐승’들을 지금의 서안과 가자 지구로 몰아넣었다. 현 네타냐후 극우정부는 1993년 두 국가 공존 해법을 제시한 오슬로 평화협정마저 부정하고, 서안합병과 유대인 정착촌을 강행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정치보다 전쟁의 논리가 앞서고 있다. 전쟁은 무의미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파괴와 고통만을 가져올 뿐이다. 상대방을 절멸시키면 무엇이 남는가. 여전히 새로운 하마스는 탄생하고, 대대로 증오의 악순환만 오갈 것이다. 지상 최대의 감옥을 열어 그곳 또한 하느님이 그들 조상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자신의 무거운 업장이 유전되지 않도록 여기서 보복을 멈춰야 한다. 이야말로 제정러시아나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로 얻은 인류의 죄책감과 동정심을 회복함과 동시에 중동의 평화정착을 위한 세기의 결단이 될 것이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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