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국 육아 도우미는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며 저출생 해결을 위해 저임금 가사노동자를 외국에서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3년 3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최저임금 적용을 없애면 월 100만원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가능하다”며 저출산 문제 해결과 여성의 경제활동 지원을 위한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두 달 만에 공청회가 열렸고,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르면 연말쯤 강남구에 70명, 성동구에 30명이 들어온다. 1평(3.3㎡) 남짓 고시원에 거주하는데 숙소비는 노동자 본인 부담이다.
정부의 이러한 방침은 기존 고용허가제의 틀 안에서 ‘이주 가사노동자’(migrant domestic workers)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 아래에서 이주노동자는 제조업, 농축산업, 어업, 건설업 4가지 업종에만 종사할 수 있다. 서비스업도 가능하긴 하지만 업종을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에 실제 이 영역에서 일하기는 어렵다. 한국인이 꺼리는 소위 3D업종에만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 가사노동업을 추가하겠다는 발상이다. 특례고용허가제란 이름으로 ‘동포’에게만 가사노동업이 허용됐는데, 이제 외국인에게도 문을 열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흐름을 바꾸는 놀라운 전환이다. 싱가포르,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가족이 이주 가사노동자와 돌봄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 조치, 세금 인센티브 제공, 이민 정책 개혁을 시행했다. 그 결과 이주 가사노동자와 돌봄노동자가 많이 이주해왔다. 이와 달리 한국과 일본은 가사노동자와 돌봄노동자의 이주를 엄격히 제한했다. 대신 국민의 돌봄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 지원 보육 및 노인 돌봄 서비스를 확대했다. 이제 한국 정부는 이러한 틀을 허물고 동남아시아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금까지 제공하던 공공 지원 보육 및 노인 돌봄 서비스를 줄이겠다는 의지 표명과 다름없다.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기는커녕 오히려 확장하고 있다니. 고용허가제의 뿌리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이 실시한 ‘손님 노동자’ 정책에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부족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주노동자를 일시적인 체류자로 간주하여 도입했다. 외국인노동자가 홀로 이주해와서 한정된 기간 지정된 작업장에서 노동만 하다가 기한이 지나면 자발적으로 되돌아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 신화는 철저하게 깨졌다. 이주노동자는 홀로 고립되어 노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해온 땅에 자리를 잡고 초국적인 가족 연결망을 구축하여 살아간다. 극심한 대립 끝에 결국 유럽은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인권의 기본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가족 재결합 이주를 허용했다. 손님 노동자 정책을 포기하고 이들이 살아갈 주거지, 학교, 의료, 사회시설 등을 마련해 시민으로 포용했다.
한국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를 자본과 노동의 지구적 재구조화 과정 중 공백이 생긴 한국 노동시장의 맨 밑바닥을 채워줄 도구로 본다. ‘근대의 문명화된 한국의 국민’이 할 수 없는 더럽고, 힘든 일을 ‘전근대의 야만적인 아시아 이방인’에게 떠맡긴다. 이주노동자를 부족적·원초적·야만적·후진적 속성을 지닌 ‘에스닉 노동자’(ethnic laborer)로 보기 때문이다. 가족을 가장 우선한다는 나라가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주해온 이주노동자가 가족 단위로 살아가는 것을 금지하고 닭장 속에 갇힌 닭처럼 격리된 채 홀로 노동만 하도록 강제한다. 인종주의로 뒤범벅된 이 추악한 국가주의가 더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떠받치게 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