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함부로 차지 마라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한 배달 노동자가 잠시 멈춰 서서 종이에 무언가 쓰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한 배달 노동자가 잠시 멈춰 서서 종이에 무언가 쓰고 있다. 한수빈 기자

라이더는 음식과 소주를 건네기 전, 본인확인을 위한 전자서명 화면을 손님에게 보여줬다. 손님은 라이더의 휴대폰 위로 손가락을 갖다 대더니 가로로 찌익 그었다. 신분증은 보여주지 않았다. 배민 약관에는 주류배달 시 손님이 신분증과 본인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업주에게 반환하라고 되어 있고, 이를 위반해 발생한 책임은 라이더에게 있다고 적혀 있다. 약관이 없더라도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자영업자에게 손님 신분증이 없어 주문을 취소하고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다음 배달 때문에 최대한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절박한 마음으로 신분증을 재차 요구했지만 ‘시비 거냐!’는 날 선 말이 돌아왔다. 라이더는 침착하게 ‘규정대로 하고 있고 다음 배달이 있는데 시비 걸 이유도 없다’고 답했다. 순간 욕설이 들리더니 라이더의 몸이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라이더가 경찰에 신고를 하자, 무차별 폭행이 시작됐다. 뒤늦게 경찰이 도착했지만 라이더의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경찰이 부른 119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라이더에게 배민이 전화를 걸었다. “고객이 맞았다는데 사실이냐?” 11월16일의 일이었다.

[직설] 라이더 함부로 차지 마라

인간미 없는 로봇 같은 일처리가 손님의 분노를 일으킨 걸까? 정작 로봇이 배달을 했다면 사태는 완전히 달라진다. 손님이 화를 참지 못해 로봇을 구타했다면, 로봇의 소유주인 배달기업이 나서 재물손괴로 민형사상 책임을 고객에게 물었을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인간배달노동자를 굳이 로봇으로 대체할 이유가 없다. 배달을 통해 발생하는 각종 분쟁과 사고를 기업이 책임지는 대신 직접 고용하지 않은 플랫폼노동자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비록 앱 속에 존재하는 노동자에게 욕설을 뱉고, 폭행을 가해 손상을 입히더라도 플랫폼기업의 피해는 없다. 당장의 치료비와 일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생계의 위험은 노동자가 감당한다. 게다가 인간은 일을 하지 않으면 일할 힘을 보충하기 위한 소득을 얻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어 로봇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일한다. 그래서 회복도 빠르다. 폭행을 당하고 다시 배달을 하려면 인간의 말랑말랑한 마음을 다듬고 또 다듬어 로봇처럼 딱딱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간로봇은 이미 우리의 산업현장 곳곳에 있다.

하지만 어떤 기업도 인간로봇의 주인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기계처럼 일하다 과로사해도, 죽음을 모르는 로봇처럼 위험하게 일하다 죽어도 노동자의 선택이라 말한다. 기업도 민망했던지 노동자의 이름 앞에 하청, 특수고용, 플랫폼을 붙여 합법적으로 책임을 나누고 전가한다. 로봇처럼 일하는 인간이 로그인하길 바라면서도 사고가 나면 자신의 플랫폼에서 로그아웃해 흔적을 지우길 바란다. 자신의 몸뚱어리에 기업이름을 새긴 로봇이 부러울 정도다. 어쩌면 손님은 기업로고가 보이지 않는 배달노동자를 그 누구도 보호하지 않을 거라 믿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노동자들은 조끼를 둘러 자신의 몸에 노동조합의 이름을 새긴다.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서로를 연결하고 타인과 연대한다. 그러나 연대는 종종 기업과 국가 앞에서 끊긴다. 기업과 국가가 노동자와 국민에게 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끊어내려고만 한다면 16일과 같은 폭행사건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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