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거대야당의 대치정국이 끝날 줄 모른다. 급기야 여당 의원들이 의장실 앞 연좌농성에까지 나섰다. 소통의 정치는 없고 일방통행식 정쟁만 있는 극단대치의 최대 피해자는 주권자 국민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마 총선에서 국민이 심판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자위해야 할까? 그러나 방향성도 없이 의욕만 앞서다간 오히려 낭패만 보기 십상이다.
자칫하다간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은 안중에도 없이 이념놀음과 권력놀음에 날 새는 줄 모르는 권력자들에게 면죄부만 주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의 여론 물타기나 판흔들기에 주권자의 신성한 한 표를 낭비하기보다 헌법이 그들에게 부여한 권력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현명한 판단만큼 의미있는 선택은 없을 것이다. 마침 주권자의 판단을 필요로 하는 중요한 권력충돌이 전개되고 있다. 바로 법률안 거부권과 탄핵소추권의 대결이다.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개정법률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된다. 야당은 방통위원장과 더불어 고발사주 의혹을 받고 있거나 개인비위가 의심되는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하고 있다.
거부권이나 탄핵소추권이나 권력 간의 상호 통제를 위해 헌법이 부여한 권한이다. 둘 다 대통령과 국회의 재량권이라는 점에서 사법적으로 통제할 방법이 마땅찮다. 결국 국민의 공론에 의한 정치적 심판만이 남아 있는 셈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입법독재를 막기 위해 거부권이 불가피하단다. 야당은 검찰권 등 행정권의 오남용과 방송장악을 통한 행정독재를 저지하기 위해 탄핵소추가 필요하단다. 서로 상대방의 독재를 명분 삼아 헌법과 국민을 들먹인다. 누가 말 따로 행동 따로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오용하는지 낱낱이 기억했다가 기다리던 그날이 오면 국민들은 헌법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대부분의 국민에 해당하는 근로자가 국제인권규범이나 헌법상 노동기본권의 정신에 충실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현행법의 위헌적 요소를 제거하는 최소한의 입법이다. 헌법국가라면 하청근로자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규율하는 원청사업자가 헌법상 단체교섭권을 회피하기 위하여 법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용인해선 안 된다. 헌법상 자기책임원리를 넘어서 근로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공동 불법행위 책임을 전가하는 손해배상이나 가압류의 오남용을 편드는 것이 헌법상 기본권 보장의무를 지는 국가가 할 일은 아니다. 문명국가의 보편규범 및 판례의 전향적 흐름이나 인권위의 권고에도 부합하는 방향이다. 거부권을 행사할 헌법적 정당성이 없는 것이다.
야당의 이동관 탄핵소추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방통위는 현재 무법 상태라 해도 틀리지 않다. 현행 방통위법은 방송의 독립에 관한 한 방통위에 독립기관에 준하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를 위해 5인 합의제기구로 만들어 대통령뿐만 아니라 여당과 야당이 구성에 관여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 방통위는 2인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5인 기관이 2인체제로 운영되는 것이 법적 정당성을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이러한 파행에는 대통령의 의도적인 인사권 남용이 배후여서 문제다. 전임 방통위원장을 억지춘향식으로 면직하고 방송탄압의 전비로 악명 높은 자신의 특보를 대신 임명했다. 정작 야당 추천 위원은 무려 7개월 넘게 임명하지 않아 급기야 당사자가 사퇴하게 만들었다.
대행체제 이후 현 방통위원장 취임 후까지의 방통위 구성 및 운영은 이런 원초적 위법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2개월짜리 대행체제가 반쪽 위원회로 KBS 수신료 분리징수, KBS나 MBC 등의 지배구조 개선 조치 등 중대사안을 적법절차마저 무시하고 밀어붙인 배후에 이동관 특보가 있다는 소문이 난무하였다.
세간의 추측대로 선임된 이후 위원 2명의 위법체제에서 방송 관련 중요안건을 의결한 것은 탄핵절차를 통해 그 시시비비가 가려져야 한다. 법적 근거가 없고 관행에도 어긋나는 방송통신심의위의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고 월권으로 방심위 업무에 개입하고도 안하무인격이다. 법치국가의 기본상식마저 부인하는 공직자가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국민대표기관인 국회가 할 일인가. 집권여당이 농성으로 방해할 일인가. 주권자 국민이 헌법으로 심판하는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