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4일 장면 총리는 부흥부 장관 태완선을 상공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개각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제발전의 핵심 수단인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주관 부서인 상공부가 미온적으로 나오자 장관을 교체해서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충격적인 이 인사 발령은 바로 12일 뒤 5·16 군사정변 발생으로 휴지가 됐다.
당시 국영기업 3개 전력회사는 부실 경영으로 누적된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장면 정부는 하나의 회사로 통합해서 경영을 정상화시키고, 신규로 민간 회사를 참여시키는 국영·민영이 공존하는 전력산업 경쟁체제를 추진했다. 그런데 이러한 구상은 오히려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61년 7월 군사정부는 3개사를 통합, 국영 한국전력(주)을 설립하고 3개 민간 발전사를 시장에 진입시켜 서로 경쟁을 하도록 했다.(오진석 <한국 근현대 전력산업사, 1898~1961>)
이후 1982년에는 민간 발전 3사까지 합병해서 100% 정부 소유의 한국전력공사로 재출범했다. 그러나 1989년 정부 지분 21%를 국민주 2호로 민간에 매각하면서 증시 상장을 했다. 이는 운영은 독점이지만 ‘시장’의 평가를 받겠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 1997년 외환위기는 전력산업에 엄청난 구조변화를 요구했다. 이때의 잘못된, 미완성된 전력산업 구조조정이 현재 전력산업의 발목을 잡고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맞아 정부는 외자 유치를 명분으로 전력산업 민영화 방침을 정했다. 이에 1999년 1월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01년 4월 한전의 발전부분을 6개사로 분할했다. 송전은 한전이 그대로 수행하되, 판매를 하는 배전부문은 2004년까지 5~6개사로 분할한 후 2008년까지 민영화한다는 게 기본계획이었다.
그리고 분할된 발전회사와 전력을 판매하는 배전회사 간의 거래를 중개하는 전력거래소를 개설했다. 전력거래소의 문제는 전력 구매 가격 결정방식으로 계통한계가격(SMP)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SMP는 매 시간별 전기를 공급한 발전기의 변동비(연료비) 중 가장 비싼 변동비를 모든 발전기에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 따라 대부분의 SMP가 LNG가격으로 결정됐다. 따라서 연료비가 싼 석탄발전이나 원자력발전은 연료비 차액을 다 받게 되므로 엄청난 횡재(windfall)를 갖게 됐다. 문제는 이 SMP가 소매가격, 즉 시장과 연동되면 수요·공급 조절기능을 하게 되는데 소매가격은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한전은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아야 하니 수십조원의 적자가 쌓이고 있다.
SMP가 갖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횡재를 갖는 원자력과 석탄발전 투자를 지속적으로 유인한다는 점이다. 삼성물산의 강릉 안인화력이나 포스코의 삼척화력 발전소가 이런 배경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야심찬 전력산업 구조개편안은 기존의 민영화 방침을 정부가 번복하면서 2003년에 중단됐다. 그렇다고 발전사를 다시 통합하지도 않았고, 전력거래소는 SMP로 운영을 하니 횡재는 여전하다. 국산 토종 재생에너지 가격도 SMP와 연계시켜 발전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전력 판매는 여전히 한전 독점하에 정부 통제를 받고 있다. 그 결과 문제는 쌓이면서 시대변화에 적응도 못하고 그때그때 땜질 처방만 하고 있다.
시대변화란 재생에너지를 늘려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기업의 RE100도 지원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을 위한 그린수소도 생산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융합을 통한 전력 신산업을 육성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높여야 한다. 2013년 밀양 송전탑 사태를 계기로 전기 생산지에서 소비하는 분산전원도 중요해졌다. 이러한 것에는 한전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투자가 따른다. 시장을 개방해서 민간의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 민영화가 아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새 정부가 들어서자 단단히 준비를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시절부터 전력산업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인수위가 나름대로 준비해서 2022년 4월28일 발표한 것이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과제’다. 인수위(경제 2분과)는 3대 기본방향으로 ①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합리적 조화 ②공급확대 위주에서 수요 정책 강화 ③에너지 시장 기능 정상화를 제시하고, 이를 위한 5대 중점과제를 내놓았다. 5대 중점과제는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과 에너지 믹스 △시장기반 수요 효율화 △신성장 동력으로서 에너지산업 △튼튼한 자원안보 △따뜻한 에너지전환이다.
5대 중점과제 중 핵심은 ‘시장기반 수요 효율화’다. 구체적으로는 △에너지 수요 효율화를 시장기반으로 적극 추진하고,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구조 확립 추진 △전 부문의 에너지 효율 혁신을 유도할 수 있는 체계를 강화하고, 한전 독점 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하며, 다양한 수요관리 서비스 기업을 육성 △전기위원회의 독립성·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인력을 강화하고,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요금 원칙을 확립 △기저전원·저탄소전원(수소 등) 대상 계약 시장, 보조서비스 시장 도입 등 전력 시장 다원화를 추진하고, 경쟁 기반의 전력 시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인수위 발표는 2022년 5월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21번에 그대로 반영됐다. 부연 설명에서는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전력 시장’을 강조했다. 현재와 같은 (한전 중심의) 수직 통합된 구조로는 효과적인 수요관리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권고 내용까지 소개했다.
IEA는 “전력 부문을 개방해 전체 가치사슬에서 진정한 경쟁과 독립적 규제 기관을 도입하지 못한 점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위의 많은 약속 중에서 우선 한 가지만 묻고 싶다. 이러한 약속을 설계·추진할 ‘전기위원회 독립성·전문성 강화 방안’ 발표는 왜 아직도 안 하고 있는가, 언제 할 것인가?
<김경식 ESG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