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릴레마’의 사회운동,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우리가 처한 문제는 이것 아니면 저것과 같은 양자택일이나 딜레마를 넘어설 때가 있다. 트릴레마란 그러한 난해한 문제의 한 양상인데,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며 이 셋 중 둘을 만족시키면 다른 하나는 희생될 수밖에 없는 모순적 상황을 나타낸다. 잘 알려진 트릴레마 사례로 국제경제에서는 안정된 환율, 자유로운 자본이동, 독자적 통화정책 간 관계가 있고, 재정에서는 낮은 조세 부담, 낮은 국가채무, 높은 복지 수준 간 관계가 있다.

현 정세 사회운동도 트릴레마 상황에 처한 듯 보인다. 사회운동의 곤경을 모순적 구도로 정리해보면 현 사태를 이해하거나 전망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사회운동은 사회 전체의 역량을 낮추지 않도록 민주주의적 규범을 옹호하면서도 독단을 일삼는 정부와 적절히 대결하고 기존의 정치세력 구도에 균열을 내는 정치세력화를 달성해야 한다. 이를 사회운동의 세 가지 목표로 정리하면 ①집권세력 비판 ②민주주의적 규범의 옹호(반포퓰리즘) ③새로운 정치세력화 추구(양당체제 극복)가 될 것이다.

언뜻 세 가지 목표는 동시 달성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조합은 나머지 하나를 배척하는 결과를 낳는다. 우선 집권세력 비판-민주주의적 규범의 옹호 조합은 정부를 적절히 비판하되 정치적 수단의 활용에 있어 제한을 두기에 현재의 진영화된 조건에선 확장성(세력화의 힘)을 갖기 어렵다. 자칫 양비론이나 온건적이라 지적당하며 지지세력 확보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적 규범의 옹호-새로운 정치세력화 조합은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세력화(반포퓰리즘 가치동맹)를 추구한다. 그렇기에 집권세력 비판에 거리를 두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대해 침묵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진영으로부터 우파로 내몰려 고립될 수도 있다. 집권세력 비판-새로운 정치세력화 조합은 현재 주류 운동세력들이 자처하는 포지션이다. 강력한 비판(대통령의 퇴진까지)과 세력화의 의지는 최대치의 권한 활용(온갖 탄핵까지)을 손쉽게 택하게 하고 민주주의적 규범의 훼손을 묵인하거나 장려할 여지가 크다.

위 구도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적절한 목표를 내놓을 수도 있고 위 세 가지 목표를 동시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총선을 앞두고 여러 정치세력 간 벌어지는 교합 가운데 이를 달성할 세력이 형성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람마다 다양한 조합으로 현재의 구도를 이해할 수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있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양극단화를 넘어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는 것, 내전 가운데 민주주의의 자살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만큼 규범과 원칙의 훼손이 일상화되었다는 것, 그로부터 제3의 정치적 공간은 실종되었고 사회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진단에 합의하고 출발한다면 현재의 곤경을 넘어 우리 운동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Today`s HOT
영국의 차고스 제도 주권 시위 허리케인 밀턴이 상륙할 멕시코 상황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1주기 추모에 참석한 트럼프 전 대통령 볼리비아 축제 속 황소와 투우사
홍수로 침수된 말레이시아 샤알람 테니스 경기에서 힘차게 공을 치는 미국의 테일러 프리츠
우크라이나 군인 추모의 벽.. 나토 사무 총장이 방문하다. 홍수로 피해 본 치앙마이, 구호 물품을 옮겨주는 코끼리
파키스탄에 일어난 폭발 사건 골프계의 챔피언, 대만의 케빈 유 새로운 허리케인 밀턴에 대비하는 주민들 계속되는 전쟁.. 모로코에서 시위하는 사람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