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범죄에 대한 법적 규제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혐오범죄는 사회적 약자는 물론
사회 전체를 불안으로 몰아갈 수도

법적 논의 서둘러야 한다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범죄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넥슨전투. 최근 진행 중인 게임산업 집게손가락 논란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회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애니메이션,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영상의 한 장면을 잘라 집게손가락 모양을 남성 비하 표현으로 단정하고 창작자의 개인 신상을 뒤져 페미니스트라는 낙인과 함께 해고하라는 요구를 끈질기게 이어간 이 사건은 다행히 창작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진실이 가려졌다. 넥슨의 하청업체인 뿌리에서 문제가 된 장면을 그린 이는 40대 남성이며, 남성을 조롱할 어떤 이유도 없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현역 의원들이 공격에 가담했고 아직까지 반성이나 사과의 뜻을 밝힌 이는 없다.

한 달쯤 전 지방도시의 편의점에서 20대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한밤중에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머리가 짧으니까 페미니스트일 것이고 ‘페미는 맞아도 된다’는 폭언이 가해자의 발길질과 함께 쏟아졌다. 피해자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등까지 내려오도록 머리를 길렀고 다시 머리를 기르는 중이었다. 가해자는 여성혐오를 일삼는 커뮤니티의 회원이었고 검찰은 가해자를 ‘혐오범죄’로 기소했다.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과 혐오범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달에는 서울의 유명백화점 전광판에 한국 여자를 다 강간하겠다는 메시지가 등장했지만, 경찰은 고소 내용 검토 후 수사하겠다는 말만 했을 뿐 한 달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아침 신문에서 혐오 사건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압수수색’에 능한 우리나라의 공권력은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법으로 시민의 행동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처럼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사회에서 또 다른 법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행위를 감시하고 억제하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혐오표현과 혐오범죄의 강도나 빈도는 사회적 관용의 수위를 훨씬 넘어섰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혐오범죄에 대한 법적 대응을 제도화해 왔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 독일은 반유대주의와 나치즘, 반이슬람주의에 대한 법적 규제를 계속해 왔다. 2011년 신나치 조직이 주도한 반이슬람 시위가 사회적인 충격을 일으키면서 인종, 민족, 종교, 성별, 정치적 성향, 장애 등과 관련된 성향에 따라 발생한 범죄를 혐오범죄로 규정하고, 그 특징을 정치적 동기에서 찾았다. 특히 폭력적 행위를 선동하거나 미디어를 통해 배포하는 행위를 혐오선동죄로 보고 형법에서 규율하기 위한 논의도 계속했다. 영국은 1965년 인종관계법을 시작으로 공공질서법, 인종·종교 혐오법, 이민법 등을 통해 혐오범죄를 예방하고 처벌하기 위한 법률을 정비해 왔다. 얼마 전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의 주장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 행위를 한 관람객이 3년간 모든 축구경기 관람 금지처분을 받은 일은 우리도 잘 아는 소식이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혐오범죄 규제에 소극적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여성혐오, 동성애혐오 등과 관련된 혐오와 차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혐오의 시대’(decade of hate)라는 우려가 등장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 부여된 우월적 지위로 인해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연방 차원의 법률은 없다. 그럼에도 혐오범죄통계법을 제정해 관련 통계를 수집하고 혐오범죄가중처벌법에서 혐오 사실이 인정될 경우 형량의 3할까지 가중처벌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성별이 혐오표현과 혐오범죄의 대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번 지적되어 왔다. 혐오표현(hate speech)은 행위자의 주관적 감정, 즉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 대한 편견이 개입된 것으로 모욕이나 위협, 명예훼손, 경멸, 비하 등을 가리킨다. 혐오범죄(hate crime)는 폭행이나 재산상의 손해, 권리 침해 등 범죄적 결과를 초래할 때 발생한다. 한국에서도 외적으로 드러난 범죄행위에 혐오감이라는 동기가 인정될 경우 가중처벌의 사유가 될 수 있다.

혐오범죄는 피해자 개인에 대한 공격뿐 아니라, 그가 속한 집단이 표적집단으로 범죄의 대상이 되며, 오히려 이런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혐오범죄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더 강력하게 나타나는 동시에, 사회구성원 전체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갈 수 있다. 혐오범죄에 대한 법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과 혐오범죄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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