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주년을 맞아 경기문화재단이 개최한 2023년 DMZ 평화문학축전에 참석하여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와의 대화’ 사회를 봤다. 그 일을 의뢰받고 나는 좀 들떠 있었다. 참전했던 200여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저자로 잘 알려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직접 만나 대화도 나눌 수 있다니 꿈같은 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에게 건넬 질문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나는 무력해지고 말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의 책 <아연 소년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 이야기는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 또다시 ‘삶의 철학’ 대신 ‘사라짐의 철학’ 안에서 사는 일은 이제 하고 싶지 않다.” 전쟁의 참상과 이를 증언하는 비통한 목소리 속에 머무르며 그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감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런 작가에게, 다시금 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며 전쟁에 관해 물어야 했다. 그가 전쟁에 관해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을 것만 같다.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한데 모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점점 더 무력해졌다. 낭독을 맡은 사마르 사미르 메즈가니 작가는 공습에서 살아남은 가자지구의 아이들이, 폭격에 의해 사망하여 시신이 수거될 경우 자신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하려고 매일 아침, 손에 이름을 적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기 죽음이라도 알리려는 아이들의 작은 손, 쉬이 부서져 갈 대책 없이 말갛고 말랑한 손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왠지 멀리서 기도하는 손들은,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안온한 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들은 아무것도 지켜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 시인은 너무도 무력해서 오히려 용기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올해 10월 발간된 책 <우리 힘세고 사나운 용기>에서 활동가이자 시인인 희음은 ‘가장 먼저 울고 가장 나중까지 우는 사람인 시인’으로서 지녀왔던 자부심을 의심하게 된 일화를 털어놓는다. “내가 쓴 시들은 진짜 울음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절대 그렇지 않았다. 단지 몇 방울의 눈물을 섞어서 쓴 문장들이 부끄러웠다. 그 문장들은 고통이 있는 자리로부터 늘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안전함을 위한 거리였다. 그 고통들은 내 삶을 침범하지 않았다.” 자기 시의 한계를 마주했을 때, 슬픈 시를 쓰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무력해질 법도 한 그때, 그는 세계의 구석으로 밀려난 채 죽어가는 존재들이 있다고 부르짖는 이들이야말로 시인임을 깨닫고는 책상 밖으로 나가 이들을 좇는다. 온몸으로 우는 이들 곁에 머물며, 거리에 서서 전쟁을 멈추라고 열렬히 외친다.
한 개인은 결코 전쟁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무력감을 핑계 삼아 침묵 속에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양분 삼아 더욱 단단하고 줄기가 많은 용기를 길러내어 함께 목소리 낼 이들을 얽어간다. 희음에게서 얻은 굳센 기운으로 다시금 생각해 본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아무리 전쟁 얘기를 해도 전쟁은 끝나지 않으므로, 그는 전쟁 이야기를 멈출 수 없을 거라는 좌절이 아니라 그럼에도 그가 전쟁에 관해 말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력하기에 더욱 맹렬해지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우리에게 지지 않는 사랑과 용기를 한 움큼씩 나누어주며.
정다연의 시 ‘흑백필름’의 구절을 빌려 본다. “때로는 비명에 가깝게 소리를 질렀어야 했다는 것/ 길을 막아서고/ 잠깐만 시간을 내주세요 들어주세요 말했어야 했다는 것/ 한걸음도 포기해서는 안 됐다는 것.” 무력감을 딛고 일어나니 한층 높아진 키로 좀 더 멀리까지 말을 건넬 수 있을 듯하다. 전쟁을 멈추라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