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용보험료 꼬박꼬박 내잖아요. 그러면 육아휴직도 되지 않나요?” 광주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의 상담전화에 식은땀이 났다. 부끄럽게도 배달하는 아빠가 육아휴직을 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배달, 화물, 학습지 교사 등 노무제공자를 위한 고용보험은 출산전후휴가만 보장한다. 혹시 제도가 개선됐을지 몰라 법률을 뒤지고 전문가 자문을 구했지만 육아휴직뿐만 아니라 배우자 출산휴가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사실만 확인했다.
2020년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했다. 같은 해 12월23일 고용노동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3년 7월21일 인도에서 열린 G20 고용노동부 장관회의에서 대한민국이 플랫폼 종사자들을 위해 산재 고용보험 제도를 개선했다고 자랑했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전 국민’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구멍이 뻥뻥 뚫린 사회안전망의 그물 사이로 추락하고 있다.
고용보험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노무제공자 산재휴업급여를 최저임금 미만으로 삭감했을 뿐만 아니라,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평균임금 산정기간 제외기간’을 노무제공자에게만 적용하지 않고 있다. 산재노동자에게 평균임금에 준하여 보상을 해야 하는데 질병이나 부상, 출산 등 특별한 사유로 일을 하지 못해 소득이 삭감된 기간을 제외해야 평소 노동자가 벌던 소득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노무제공자에게만큼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휴업급여를 삭감하여 지급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이정식 장관은 뜬금없이 ‘산재 카르텔’을 운운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감사인력을 투여해 산재 부정수급 사례를 발견했다고 자랑했다. 문제가 된 부정수급 건은 259건으로 지난해 산재 승인 건 13만5983건의 0.19%에 불과했다. 부정수급 액수도 60억원 정도로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기업들에 감면해준 산재보험료 7502억원의 0.8%다. 여기서 정부의 재벌 사랑을 엿볼 수 있는데, 전체 감면기업 중 1.6%에 불과한 대기업에 3416억원의 보험료를 깎아줬다. 흥미로운 점은 장관이 ‘산재 카르텔’ 브리핑을 하면서 산재제도를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했다며 또다시 자찬한 것이다. 정부가 근로기준법 바깥으로 추방한 특고, 플랫폼 노동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도 않으면서 정책홍보를 위한 간판으로만 걸어놓고 재벌에게 유리하게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카르텔’이다.
고용노동부는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제도 개선 TF를 구성해 산재보상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추천할 전문가가 있다. 육아휴직이 되냐고 물었던 배달노동자는 아이와 함께 라이더유니온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아이가 울면 아이를 달래 금새 울음을 그치게 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어떤 사회보험이 필요한지 잘 아는 현장 전문가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노무제공자 사회보험 문제를 비판한 나의 ‘국가의 보험사기’라는 칼럼에 즉각 반박자료를 배포했는데 이번만큼은 현장 노동자와 함께 제도 개선을 논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