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서민의 일기장이자 가계부였던 ‘달력’

엄민용 기자

어떤 말을 대다수 사람이 기존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하면 그에 맞춰 사전의 뜻풀이도 바뀐다. 그런 것이 국어다. 새해를 맞아 새롭게 펼친 ‘달력’도 그러하다.

달력은 본래 ‘달(月)의 일기’를 뜻한다. 한자로는 ‘월력(月曆)’이라고 한다. 해를 기준으로 날을 세는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달을 기준으로 날을 셌다. 즉 달의 변화에 따라 날수를 표시한 것으로, 달이 차고 기우는 한 달 치를 엮은 것이 달력이다. 1년 열두 달을 책처럼 하나로 엮은 것은 ‘책력(冊曆)’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해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1년 치가 묶여 있다. 따라서 엄밀하게 따지면 달력이 아니라 ‘일력(日曆)’이나 ‘양력(陽曆)’, 또는 ‘책력’으로 부르는 게 옳다. 그러나 그렇게 쓰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1년 가운데 달, 날, 요일, 이십사절기, 행사일 따위의 사항을 날짜에 따라 적어 놓은 것”이 달력이다.

양력을 기준으로 한 근대식 달력이 우리나라에 널리 보급된 것은 1930년대다. 날짜를 따져 생산활동의 계획을 세우고 세시풍속 등을 미리 살필 수 있는 달력은 이후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요일 아래로 양력과 음력을 비롯해 24절기와 각종 행사일이 꼼꼼히 적혀 있으니 서민들에게는 이만한 수첩도 없었다.

거기에 가족의 생일이나 부모님 기일은 물론 방세나 공과금 내는 날이며 빌려준 돈을 받기로 한 날 등도 기록해 두곤 했다. 한 가족의 일기장이자 가계부로서 그 역할이 요즘의 스마트폰에 뒤지지 않았다. 달력을 뜻하는 ‘calendar’가 ‘흥미 있는 기록’ ‘회계장부’ ‘빚 장부’ 등을 뜻하는 라틴어 ‘칼렌다리움(calendarium)’에서 유래한 것에 딱 들어맞는 쓰임이다.

한편 ‘calendar’를 ‘카렌다’로 쓰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는 일본어식 발음 표기다. 우리식 외래어 표기는 ‘캘린더’다. 다만 멀쩡한 우리말 ‘달력’을 굳이 외래어 ‘캘린더’로 쓸 이유는 없다. 국립국어원도 ‘카렌다’와 ‘캘린더’ 모두 ‘달력’의 비표준어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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