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꿩 대신 닭, 떡국 대신 미역국

엄민용 기자

민족 대명절 설이 다가왔다. 예나 지금이나 설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중 하나가 가래떡이다. 요즘에는 마트나 떡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40여년 전 만해도 설 하루 이틀 전부터 동네 떡방앗간에는 긴 줄이 서곤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집에 가져와 조청이나 설탕을 찍어 먹는 일은 설날 즈음에나 누리는 호사 중의 호사였다. 먹거리가 차고 넘치는 요즘에는 코웃음이 절로 날 풍경이지만, 예전에는 가래떡만 한 주전부리도 없었다.

가래떡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우선 가래떡의 ‘가래’가 밭을 가는 농기구 가래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늘려서 길고 둥글게 만드는 떡이나 엿”을 ‘가래’라고 불렀고, 이것이 가래떡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더 유력한 설이다.

색이 하얗고 긴 가래떡은 국수처럼 장수를 기원하는 음식으로 민속 의식에서도 두루 쓰인다. 예를 들어 가래떡을 똬리 틀듯이 둘둘 말아서 놓으면 ‘용떡’이 된다. 만복이 깃들길 기원하는 혼례상이나 용왕님이 뱃길을 안전하게 이끌어 주십사 하고 비는 고사상에 이 떡을 올린다. 가래떡은 썰어 놓은 둥근 모양이 엽전을 닮아 부귀를 뜻하기도 한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습이 여기서 유래했다. 생활이 넉넉해지고 식구들이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떡국을 끓였다. 이런 떡국에 꼭 들어가던 것이 꿩고기다. 맛있기도 하거니와 꿩을 상서로운 새로 여겼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꿩을 ‘하늘 닭’이라 해서 길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일반 백성이 꿩고기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또 소고기는 너무 귀해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형편에 맞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닭고기뿐이었다. 그래서 떡국에 닭고기를 넣게 됐고,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한편 그동안은 설날에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나이도 한 살을 먹는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생일에 미역국’을 먹어야 한 살이 늘게 됐다. 꿩고기가 닭고기로, 떡국이 미역국으로 바뀌듯이 늘 변하는 것이 세상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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