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못하더라도 후퇴는 하지 말자

1년 전, 지면에 글을 시작하면서 던진 화두는 오늘날 사회운동이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익숙한 것 중 하나는 안일한 진영주의의 대명사인 ‘민주(진보)대연합’이었다. 그것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현 사태를 해석하며 반민주의 자리에 끊임없이 민주당 아닌 정당을 채워넣고 그들을 청산하면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라는 논리로 가득 차 있다. 적이라 지명된 이들의 이름만 바뀔 뿐, 달라진 세력구도와 비판적 성찰은 없고 오직 적과 우리의 대립이 모든 갈등을 삼킨다. 정세는 납작하고 대안은 텅 비어 있다. 진보운동은 적에 맞서 민주주의를 되찾는 장구한 여정에 따라 시시포스적인 운동을 반복할 뿐이다. 총선을 두어 달 남긴 현재, 시민사회와 야권으로부터 민주대연합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별 차이가 없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맞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한나라당 독주구도에서는 작은 차이도 중요하다고 답해야 한다.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다시 찾아왔다고 말한다면, 한나라당 독주구도에서 비판적 지지가 올바른 지지의 형태라고 말해야 한다.” 홍세화 선생이 2010년 새해를 열며 쓴 칼럼의 일부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막기 위해 진보운동이 민주당과의 작은 차이를 뒤로하고 ‘반MB연합’으로 뭉치자는 선언이었다. 굳이 길게 인용한 것은 지금 민주대연합을 들고나온 이들의 주장이 14년 시차를 두고도 동일하게 선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큰 적과 싸우려면 민주당을 견인해서 뭉쳐야 한다는 진보운동의 헛된 미망 말이다.

민주대연합은 백기완 선생이 1987년 대선 유세 중에 “우리의 당면 목표는 민중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현 체제의 군정연장 음모를 분쇄하는 일 … 이를 위해 민주세력은 대연합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출발했다. 당시 이 주장은 야당들로부터 외면받았고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민주대연합이라는 미망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령처럼 진보 운동·정당 주변을 떠돌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 개정이 화두다. 시민사회 원로들은 민주당의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후퇴하려는 시도를 막는 동시에 현 선거제를 유지하면서 민주당 주도의 민주진보연합정치를 하길 요구한다. 현 선거제에서 민주당에 강제되는 위성정당 창당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비례연합정당을 구성함으로써 반윤석열연합을 형성하자는 제안이다. 비례명부를 같이 쓴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수위가 높은 ‘연동형 비례대표제판 민주대연합’이다. 30년째 반복되는 민주대연합으로 총선을 치르면 무너지는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새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일까? 지난 선거들에서 이뤄진 민주대연합 여러 판본의 기억을 되짚어보건대 그런 건 없었다. 외려 사회운동의 힘이 민주당으로의 수혈 끝에 쪼그라들었을 뿐. 진보는 못하더라도 후퇴는 하지 말아야 한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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