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낯선’ 달리기 연습

심완선 SF평론가

달리기를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헬스장보다 야외에서 달리는 쪽이 기분 좋고 체력도 잘 는다는 거였다. 달리기 초심자로서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진 못했다. 밖을 달리다 보면 나와 몸과 세상이 얼마나 서먹한지 절감하게 된다. 바닥은 디딜 때마다 딱딱하게 굳어 나를 밀어낸다. 공기는 날카롭거나 텁텁하다. 내 다리는 의지에 반해 자꾸 땅에 달라붙으려 든다. 애써 팔다리를 통제하고 있으면 사지가 자유롭다는 개념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이상한데? 안 되는데? 물론 배부른 소리다. 하지만 나는 이럴 때나 되어야 ‘오체불만족’ 생각에 빠진다. 몸뚱이가 물리적 실체를 지닌 구속복처럼 다가오는 순간이다.

잘 달리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동작이 몸에 익어 알맞은 자세가 나오도록 연습을 해야 한다. 이건 체력 이전의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해치우는 행동은 어찌나 많은지. 달리기만큼 힘들지는 않지만 걷기도 어려운 행위다. 오른 다리를 올릴 때 양팔이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그 상태에서 반대쪽 다리를 올리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보자. 자연스레 걸어다니던 사람이 새삼 ‘보행 연습’을 하면 걷는 행위가 엄청나게 어색해진다.

돌기민의 소설 <보행 연습>에는 ‘지구에 불시착한 식인 외계인을 위한 안내서’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외계인인 ‘무무’에게 이족보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낯선 행위다. 인간처럼 보이도록 변신할 때 무무는 매번 팔다리를 자른다. ‘평범한 인간’은 팔다리가 두 개씩이므로 그보다 많은 것은 잘라야 한다. 다행히 무무의 몸은 회복력이 뛰어나 며칠 지나면 잘라낸 부분도 재생된다. 이는 몸이 멋대로 꿈틀거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무의 몸은 아무리 통제해도 금세 원래대로 돌아가려 한다. 집중이 흐트러지면 변신이 풀려 본래의 촉수, 이빨, 발톱이 드러나고 만다. 외출은 늘 피곤하고 힘겹다.

더군다나 무무는 ‘남자답게’ 혹은 ‘여자답게’ 걸어야 한다. 여자 모습일 때 구두를 또각거리며 걸을 때는 무릎을 모아야 자연스럽다. 이에 어긋나면 바로 수상쩍다는 시선을 받는다. 걸음걸이에는 미세하고 촘촘한 규범이 작동한다. 무무는 처음 10년간은 바르게 걷는 기준을 알아내려 애쓴다. 이후에는 기준이 있는 듯이 행동하느라 애쓴다. 정확한 기준은 없는데도 눈에 띄지 않으려면 통념에 맞춰야 한다. “규범은 유리 같은 것”으로, “사람들이 규범을 떠받들어 떨어뜨리지 않는 이상, 그것은 깨지지 않고 굳건히 유지”된다.

무무의 몸에 알맞은 걸음걸이는 남자답지도 여자답지도, 인간답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무무는 인간의 규범에 맞는 자세를 수행하느라 몸에 맞춰 걷지 못한다. 나는 예전에 ‘도브’에서 만들었던 ‘여자답게 달리기’ 광고를 떠올렸다. 여자답게 달리라고 요청하자 어른들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뛴다. 자기도 우스꽝스러운 줄 안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웃음을 터뜨린다. 아이들은 고민 없이 전력으로 달린다. 이들에겐 전력으로 달리는 자세가 여자답지 않다는 규범이 없다. 나는 어떻게 달리도록 배웠더라? 어쩌면 지금은 내 몸에 맞는 달리기를 연습할 기회인 걸까? 낯선 ‘보행 연습’을 보며, 나도 나를 어색하게 점검해본다.

심완선 SF평론가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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