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나라를 갉아먹는 방법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에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현재 한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권력자들의 수준은 한심할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오직 선거 승리가 목적인 보수를 사칭하는 선거결사체인데 이들이 나라를 갉아먹고 있다. 이유는 세 가지이다. 우선, 보수 사칭 선거결사체들은 권력 쟁취라는 사익 추구가 목적이지 공공성 이런 거에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비대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등은 검사 시절 재벌 수사로 공정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쌓고 그것을 기반으로 심지어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재벌총수를 사면하고 심지어 자신이 수사한 사건이 법원에서 이례적인 전부 무죄가 나오는데 전혀 창피함이 없이 무죄판결이 재벌총수의 사법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검찰의 기소 논리를 무력화시키려는 재계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판결을 옹호하기까지 한다. 얼마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1심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이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국 그들은 검사 시절에도 공정, 정의를 위한 사명감보다는 굵직한 재벌 사건을 해야 검찰에서 출세하기 때문에 수사했던 것으로밖에 풀이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원칙을 지키는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며 국가 운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공성도 일관성도 없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두 번째, 보수를 자처하는 권력자들은 자기들끼리 우쭈쭈하는 데 선수이다. 서로의 부드러운 인성과 해외 학벌을 추켜세우며 서로 쓴소리 안 하고 지내다 보니, 뭔가 비판을 하는 사람은 불만에 가득 찬 ‘싸가지’ 없는 좌파놈들이며 국민은 다 자기들을 존경한다고 생각한다. 더 문제는 서로 추켜올리면서 지내다 보니 자기들이 한국 사회의 의제, 방향, 전략에 대해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내가 현 권력자들이 서로를 심하게 우쭈쭈하고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계기는 그들이 들고나온 총선 전략이 운동권 청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경제성장률이 1.4%로 25년 만에 일본에 뒤진 상황에서 말이다. 또한 주식투자자들이 얼마나 희망이 없으면 내용도 발표되지 않은 기업 밸류업 정책(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에 대한 기업가치 제고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오르는 이 상황에서 말이다. 그런데 입만 열만 미래세대를 위한다던 집권 여당이 총선에 들고나온 시대정신이 운동권 청산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자신보다 못난 운동권이 껄떡거리는 게 싫은 거 같은데 운동권하고 비딱하게 자존심 싸움할 시간에 관료들하고 정책이나 다듬어라. 이런 거에만 관심을 두니 정국 운영이 이 모양이다.

마지막이다. 올해 본격적인 총선정국으로 들어서면서 현 정권은 대충 정책을 얼기설기 모아 패키지로 던지고, 뒷수습은 관료에게 맡기고 있다. 윤 대통령은 1월 초부터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서로 연관이 없는 공매도 개혁, 소액주주 이익 제고를 위한 상법 개정,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확대, 상속세 완화, 기업 밸류업 등을 묶어서 던졌다. 그러나 상속세 완화는 지금 당장 추진할 건 아니라고 물러서는 데 하루도 안 걸렸고, 소액주주 이익 제고를 위한 상법 개정도 흐지부지되는 데 딱 2주 걸렸다. 이유는 뻔할 것이다. 대통령이 총선용 민생정책을 만들어 오라고 하면, 각 부처가 자기 영역의 정책 하나씩 집어넣어서 급하게 패키지로 대통령에게 들고 가는 것이다. 그러면 대통령은 일단 그냥 지른다. 결과는? 아시안컵 한국축구다. 감독(대통령)은 전략이 없고 선수들(관료)이 경기를 뛰면서 해결하려다 지쳐서 망한다.

최근 윤 대통령이 미는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와 주식 밸류업 정책은 아주 선의로 해석하면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 시절 2012년부터 추진되었던 통화·재정·구조개혁 정책의 통합 패키지인 아베노믹스를 흉내내려는 거다. 그러면 현 정권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부터 그것이 지금 한국경제에 적용 가능한가까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총선에만 관심 있는 현 권력층이 최근 일본 주가의 급상승에만 꽂힌 것이다. 이게 일면만 보는 비극이다. 생각해 보자. 일본 주가지수가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의 최전성기 수준으로 35년 만에 회복한 게 단지 작년부터 시행한 일본 거래소의 밸류업 정책 때문이겠나? 선거 급하다고 대충 주가 부양 정책 던지다가 주식시장에 혼란만 줄 것이다. 그리고 이게 보수 사칭 선거결사체가 만들어 내는 진정한 위험성이다. 이들은 정부 재정지출만 빼고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할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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