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음모론을 퍼뜨리려 애쓸까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음모론을 퍼뜨리려 애쓸까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때였다. 대학교 때 친했던 선배로부터 오랜만에 카카오톡이 왔다. 아마 지인들에게 한꺼번에 보낸 듯했다. “중국산 백신 접종을 거부하면 테러범이 되는 법률안에 대한 반대 청원 부탁드립니다. 반대 의견이 만 명을 넘어야 합니다.” 마음이 착잡해져서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강제했다는 말은 명백히 가짜뉴스다.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돕는 비밀요원이고, 매년 쌍십절이 되면 중국인들이 인육을 먹으려고 한국으로 몰려온다는 등의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는 음모론이 어김없이 또 등장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며 우리는 묻게 된다. “왜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믿을까?” 이 질문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흔히 간과되는 또 다른 질문이 있다. “왜 사람들은 음모론을 남들에게 퍼뜨리고 싶어 하는가?” 백신을 거부하면 테러범으로 몰린다는 귀중한(?) 정보를 혼자 간직하면 그만이지, 왜 굳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 정보를 아득바득 전달하려 애쓸까?

최근 여러분에게 음모론을 설파한 지인을 떠올려 보시라. 그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다. 듣는 이의 반응을 꼼꼼히 살핀다. 행여 못 믿겠다고 대꾸하면 벌컥 화를 낸다. 예를 들어, 이재명 대표 피습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음모론에 여러분이 시큰둥해한다고 하자. 그 지인은 여러분이 ‘2찍’이 아닌지 의심할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사람들이 어떤 믿음을 자신이 현재 소속된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집단이 경쟁 집단보다 더 옳고 더 고상함을 입증하기 때문에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를테면, 보수주의자는 사형제에 대한 찬성이 보수가 진보보다 더 도덕적임을 입증한다고 보기 때문에 사형제에 찬성한다. 이러한 부족주의적 성향은 왜 사람들이 음모론을 남들에게 전파하려 애쓰는지도 알려준다.

부족 간 다툼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바로 머릿수다. 공동의 과업을 함께 수행하는 우리 팀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팀이 상대 팀을 누르기 쉽다. 효과적으로 팀원을 모집하려면, 어떤 믿음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당위의 문제로 바꿔놓아야 한다. 앞의 예를 들자면, 국정원이 야당 대표의 피습을 배후에서 꾸몄다는 가짜뉴스를 들은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그의 충성심을 알려주는 잣대가 된다. 국정원 배후설을 의심하는 민주당 지지자는 ‘사쿠라’라고 욕먹는다. 즉 진화적 시각에서 보면 사람들이 음모론을 널리 전파하려는 열정은 단체 행동에 되도록 많은 팀원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이해는 용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왜 음모론에 빠지는가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음모론을 정당화하긴커녕, 음모론을 몰아내는 길을 찾도록 도와준다. 어떻게 음모론을 줄일 수 있을까? 진화심리학자 위고 메르시에는 저서 <대중은 멍청한가?>에서 황당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이 그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어떤 이득도 얻지 못하게끔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문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어떤 소문은 개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예컨대 인사철이 되면 누가 승진할지를 두고 회사에 소문이 무성하다. 이런 경우 허황된 소문을 함부로 퍼뜨리면 유포자 자신의 평판이 땅에 떨어진다. 사람들은 입수한 소문을 점검하고 또 점검한 다음에야 남들에게 전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어떤 소문은 개개인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지만 사회적 영향을 폭넓게 끼친다. 일루미나티 암약설, 백신의 자폐증 유발설, 세월호 고의 침몰설, 이재명 피습의 국정원 배후설 등은 현실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놀랍고 기이한 이야기들이다. 어차피 진실 여부를 판독하기 어려운 이런 소문들을 퍼뜨림으로써 사람들은 비용을 치르지 않은 채 자기 부족에 대한 충성을 서로 확인하는 이득을 얻는다. 즉 유포자조차 머리로는 그러려니 하지만 가슴으로는 믿지 않는 소문들이다.

메르시에는 누군가 여러분에게 음모론을 전파한다면 이렇게 물어보길 제안한다.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왜 그에 걸맞게 행동하진 않나요?” 정말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간첩이라고 믿는다면, 113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지인들을 붙잡고 연설을 늘어놓거나, 극우 유튜브 채널에 칭찬 댓글을 느긋하게 남길 때가 아니다.

인간은 자기 편에게 유리한 진실만을 추구하도록 진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한 본성을 억누르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진실을 다 함께 추구해야 한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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