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할 때 늘 문화예술의 번영을 꿈꿨다. 반면 국가는 이를 원치 않았다. 당시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비판적인 문화예술 작품과 예술가를 검열했다.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은 대표적인 감시 대상이었다.
일찍이 영국의 문화예술정책은 우리와 반대였다. 경제학자 케인스가 제시한 ‘팔길이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국가는 예술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목표를 중요시했다. 팔길이 원칙에 힘입은 예술가들은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경제’ ‘문화융성’ 같은 구호만 휘날릴 뿐, 통제와 개입에 몰두했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당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수감되는 것을 끝으로 지난한 예술 검열이 종식되고 표현의 자유가 돌아온 줄 알았다. 요즘 때 이른 착각임을 깨닫는다.
지난달 서울시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측에 사업 탈락과 예산 전액 삭감을 통보했다. 해당 영화제는 23년간 열악한 장애인의 삶과 인권을 조망했다. 그 노력 덕에 지난 4년간 서울시 지원을 받아 더 많은 시민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정과 장애인권단체 간 갈등이 격화된 지금, 불화의 불길이 영화제로 옮겨붙었다. 영화제는 지원사업 공모 과정을 착실히 준비했고, 유일하게 공모를 신청한 단체였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탈락했다. 영화제는 성명을 통해 오세훈 시정의 문화예술검열 중단을 외쳤다. 장애인권을 다루는 영화는 불쌍한 장애인 대신 당당한 장애인을 비췄기에, 복지정책의 사각지대를 폭로했기에, 약자와의 동행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처럼 여겨 탈락시킨 것 아닐까 싶지만 확인할 수 없다. 서울시가 모든 관련 사항을 비공개 처리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문화정책을 따라 김대중 정권 때부터 도입된 문화예술의 팔길이 원칙은 보수정권의 허울뿐인 자유 앞에서 늘 위기를 맞는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의 블랙리스트가 생각나는 나날이다. 요즘은 더 노골적으로 정권을 찬양하는 말만 인정하고, 비판적인 의견은 ‘입틀막’하는 게 국정의 기조이니 서울시장도 대통령을 따라하는 걸까.
일주일 전, 휠체어를 탄 가수 강원래씨가 영화 <건국전쟁>을 보지 못하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단히 이상한 일”이라 했다. 이내 장애인 관람객들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약 한 위원장이 이 글을 읽는다면, 발달장애인과 시각·청각 장애가 있는 동료시민이 영화를 못 보게 된 이번 사태 또한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배리어프리한 상영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영화 내 자막 해설, 수어 통역, 알기 쉬운 영화 안내서와 예고편까지 별도 제공하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제다. 그런데 서울시의 의뭉스러운 결정 때문에 앞으로 장애인 관객을 위한 인권영화제가 사라질 수 있다니 “대단히 이상한 일”이다. 물론 이 영화제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 상영되지는 않았지만, 열정 넘치는 장애인 감독과 장애인 배우가 연출하거나 출연한 작품이 지난 24년간 100회 넘게 송출됐다. 부디 영화제가 계속되길 꿈꾼다. 아니, 표현의 자유가 지켜지길 꿈꾼다. 아니, 문화국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이 영원하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