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두 차례 공청회를 열었고 의제숙의단을 구성하였으며 향후 1만명 모집조사에서 선정된 시민대표단 500명이 숙의를 거쳐 4월 말에 결과를 발표한다. 복잡한 연금제도에 대한 숙의가 이만큼의 기간으로 가능할지, 총선에 묻혀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면 공론화 결과가 힘을 가질지 걱정도 들지만, 주어진 시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번 공론화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직접적 목표는 연금개혁안 마련이지만, 이 과정에서 ‘세대 간 연대’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무척 중요한 과제다. 연금개혁은 앞으로 단계적인 연속개혁의 길을 걸어야 하므로, 이러한 재인식은 초고령사회 연금개혁에서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공적연금은 가족이 부양하던 노후를 전체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사회적 부양으로 전환한 제도다. 인류사에서 세대 간 연대 가치를 구현한 아름다운 제도다. 그런데 지난 반세기 나라마다 공적연금 개혁으로 홍역을 치렀다. 공적연금을 둘러싼 조건의 변화 때문이다. 공적연금이 성숙기에 접어들던 20세기 중후반은 경제도 순조롭고 인구도 성장하여 후세대로 갈수록 노년부양 자원이 늘어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경제성장도 더디고 고령화가 심화되었다. 수명은 길어지는데 노년 부양을 위한 경제적 조건, 인구 조건이 불리하게 바뀐 것이다. 이제는 노년 부양의 부담이 후세대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시대다.
이에 연금 선진국들은 후세대 부담을 완화하는 연금개혁에 적극 나섰다. 가입자의 급여 수준을 낮추고 수급시기를 늦추었으며 보험료율은 인상했다. 나아가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은 낸 것만 받는 확정기여형으로 아예 제도를 바꾸고, 스웨덴, 뉴질랜드 등은 미래 급여를 위해 현세대가 일정 기금을 적립하기 시작했다. 이는 불가피하게 공적연금의 보장성을 약화시키기에 중간계층 이상은 퇴직연금 등을 보완한 다층보장 방식으로, 하위계층은 기초보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노후소득보장체계도 정비해 갔다. 초고령화에 대응하여 연금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계층별 노후소득보장을 도모하는 신연금체계라 평가할 수 있다.
이는 21세기 초고령사회에 적응하는 세대 간 연대의 새로운 모습이다. 현세대가 자신의 보장성을 내세우기보다 후세대 부담을 줄이는 일에 나선 것이다. 전통적으로 세대 간 연대는 앞세대가 자신의 노후를 위해 뒷세대에게 더 많은 자원을 의존하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사전에 뒷세대의 부담을 완화해 세대 간 공존을 도모한다. 20세기 인류가 만들어 낸 ‘세대 간 연대’가 21세기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연금의 미래 재정 불안정은 심각하다. 외국과 대체로 비슷한 급여를 받으면서도 기여하는 보험료는 절반에 불과하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초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의하면, 현행 제도가 그대로 가면 미래에 연금재정 적자가 한 해 GDP 7%까지 발생하고, 당시 연금지출을 보험료로 충당한다면 보험료율이 지금보다 4배나 높아져야 한다. 후세대를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현세대가 보험료 기여를 높여나가는 실천이 절실하다.
그런데도 우리의 논의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지닌 주요 가입자단체들의 인식은 안이하기 그지없다. 후세대 부담을 가중시키는 국민연금 제도 내부의 수지불균형을 지적하면 사보험 논리라며 논점을 관점의 문제로 덮어버린다. 미래세대는 높은 생산력으로 노년 부양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자신의 재정 책임을 회피한다. 소득대체율 인상이 포함된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안을 주장하면서 이 인상의 지출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30년까지만 재정계산하자며 후세대 부담 증가를 가리려 한다. 말로는 ‘세대 간 연대’를 표방하지만, 실제는 현세대 이해에만 갇혀 있는 우리 사회 현주소다.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대표단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연령으로만 보면, 시민대표단 모두가 현세대 일원이다. 국민연금 가입자 혹은 수급자로서 기여분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보장받으면서 후세대에게 그 부족 재정을 의존하는 위치에 있다. 만약 국민연금에서 후세대를 구체적으로 호명한다면, 2040년 즈음에 높은 보험료율 수준을 떠맡을 현재 초등학생과 유아,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다. 결국 세대 간 계약을 재논의하는 공론화위원회에는 현세대만 앉아 있는 셈이다.
누가 테이블 저편 아이들을 대변할 것인가? 21세기 초고령사회에서 세대 간 연대에 대한 재인식이 요구된다. 후세대를 사전에 챙기는 현세대가 되자. 우리 아이, 손주들을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