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느리다, 아름답다”, 임하은씨

김숨 소설가

느린 존재들 대개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구름이, 달이, 나무가, 판다가 그렇듯 느린 존재들은 자신의 주변을 정신없이 종횡무진하는 존재들을 느리게 ‘스쳐지나가며’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을 기꺼이 무상의 선물로 남긴다.

스쳐지나감. 그것은 고난도의 예술적 기술이다. 그것은 공기의 기술이고, 바람의 기술이며, 안개의 기술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존재들 또한 ‘스쳐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무(無) 집착의 태도에 도달한 존재만이 완벽하게 펼쳐보일 수 있는 기술이다.

오늘도 고난도의 기술을 펼쳐보이며 지하철역사 안을, 계단을, 거리 한복판을 걸어가는 그녀(임하은씨, 27세)는 여지없이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사랑으로부터 온다.”(<지극히 낮으신>, 크리스티앙 보뱅) 그녀는 ‘어머니라는 사랑’, 비교 불가능한 경지의 그 사랑이 빚는 신비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자라났다. 그 아름다움은 자연이 펼쳐보여주곤 하는 아름다움과 닮았다.

그녀가 다섯 살 때,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숲으로 갔다. 딸의 손에 나뭇잎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꽃, 씨앗, 흙, 햇빛, 빗방울, 눈송이, 바람, 물…. 그녀가 다섯 살 때, 어머니는 딸의 손을 잡고 수령 1100년인 은행나무를 보러갔다. 딸은 1100년 동안 제자리를 지킨 은행나무를, 그 나무에서 홍수처럼 흘러넘치는 노란색을 봤다. 그녀가 다섯 살 때, 그녀는 병원에서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는 딸이 또래보다 느리다는 걸 알고 기다려주었다. 딸의 바깥에서, 마음속에 들어가, 딸이 머물고 있고 머물렀던 도처에서.

그녀는 어머니와 숲을 거닐던 시간을 ‘구름이 된 시간’으로 기억한다. “갈대, 억새, 코스모스, 안개꽃, 보라색 제비꽃, 참나무, 벚나무, 밤나무, 전나무….” 그때를 떠올리면 그녀는 “구름이 된 것 같아” 한없이 가벼워진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교외 피아노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그녀는 격주 월요일마다 칼림바를 배우러 양평으로 간다. 고등학교 때 ‘전환교육지원반’ 친구들과 칼림바를 배우고 있는데, 최근 연습하고 있는 곡은 ‘할아버지의 시계’. “칼림바는 종달새 소리요. 물 떨어지는 소리를 내요.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튕기듯이 두드려야 해요. 살살… 꾹 누르면 안 돼요.” 엄지로 키바(금속막대)를 눌러 연주하는데, 모두 열다섯 개다. 그녀는 가운데 두 개 중에 왼쪽 막대가 내는 묵직한 소리가 가장 듣기 좋다. 소리에 예민한 그녀. 그런데 사람 목소리는 다 듣기 좋다. 거슬리는 목소리가 없다. 너의 목소리도, 너의 목소리도, 그리고 너의 목소리도… 듣기 좋다.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게 즐겁고 그립기’ 때문이다.

사랑을 줄 때 행복감을 느끼고, 사랑을 주는 법을 알고, “높고 푸른 하늘 같은” 사랑을 모두에게 주고 싶은 그녀의 직업은 바리스타. 고등학생 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졸업하던 해(2016년)에 서초구립반포도서관 내 늘봄카페(발달장애인 일자리 카페)에 바리스타로 첫 출근을 했다. 훈련생이던 그녀는 2018년도에 정직원이 됐다. 재작년까지 살았던 양평 집에서 카페까지 걸리는 출근시간은 무려 두 시간. 양평역에서 전절을 타고 옥수역에서 내려 다시 전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에서 내려 늘봄카페까지 걸어가는 데 꼬박 걸리는 시간이다. 그녀는 왕복 4시간 출퇴근길을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즐겁게 다녔다. 커피 내리는 게 신나고, 손님을 맞는 게 반갑고 기뻐서다. ‘마음의 친구’인 카페 동료가 시무룩해 있으면 손등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괜찮아, 괜찮아.”

자신이 내리는, 한결같은 맛이 자랑인 커피의 이름을 그녀는 ‘사월에 피는 벚꽃처럼 아름다운 커피’라 말한다. 신맛이 살짝 강하고 아몬드처럼 고소하며 단맛도 있고 초콜릿향이 난다.

어느덧 스물일곱 살이 된 그녀는 매일 퇴근길에 달을 찍는다. 달을 더 가깝게 찍기 위해서 그녀는 월급을 모아 100배줌의 스마트폰을 장만했다. 그녀는 달이 너무 멋있어서 매일 달을 바라보지만 달에 가고 싶지는 않다. “지구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어제는 달이 안 떴다. 오늘밤은 달이 떴다. 그녀는 멈추어 서서 달을 향해 두 손을 살며시 뻗으며, 그녀의 곁을 운 좋게 스쳐지나가는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몰래 선물한다.

김숨 소설가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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