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선택적 경호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나는 중학생 때 음악방송 방청석 입장을 기다리다 경호원에게 멱살을 잡힌 적 있다. 그때의 트라우마인지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경호원을 보면 몸과 마음이 위축된다. 출근 준비는 10분 컷이지만 K팝 팬이 모이는 오프라인 행사에 갈 때는 신중히 옷을 골라 다려 입고 하나밖에 없는 명품 가방을 들기도 한다. 한주먹거리로 보이지 않겠다는 속물적인 자구책이다. 이런 내게 지난해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방탄소년단 슈가의 콘서트에서 경호원이 팬들에게 박수받는 모습을 본 것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자연의 섭리에 관객의 열기까지 더해져 냉방을 해도 공연장 내부가 후덥지근했다. 그 속에서 경호원과 안전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스탠딩 구역 관객에게 물을 나눠주고,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부축해 휴게공간으로 이끌었다. 그 모습에 조금 얼떨떨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팬을 제압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대하는 경호원의 모습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슈가의 콘서트는 공연장인 케이스포돔 앞 핸드볼경기장을 대관해 대기 공간으로 제공했을 정도로 관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꼼꼼히 계획하고 투자한 행사였다. 그런 조건에서는 경호원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최근 K팝 아이돌 경호원의 팬 폭력 문제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팬사인회에서 보안을 이유로 팬들의 속옷 검사를 한 사건, 공항에서 팬을 밀쳐 넘어뜨린 일이 지난해 연달아 공론화되며 K팝의 이미지를 퇴보시켰다. 이제 K팝을 연상하면 체격적 우위를 가진 남성 경호원이 여성이 다수인 팬들을 위협하는 그림이 떠오른다. 부끄럽고 안타깝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2023년은 K팝 산업이 이례적인 규모로 안전에 투자하기 시작한 해였다.

현실과 대중의 인식이 다른 이유는 K팝 산업이 경호의 대상에서 소규모 팬과 접촉하는 현장을 열외시킨 탓이다. 현재 K팝 산업은 대규모 관중이 밀집하는 유료 콘서트에 한해 선택적 경호를 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로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공연 산업이 성장하며 관객의 종합적인 만족에 주의를 기울이게 됐기 때문이다. 조용필, 아이유, 방탄소년단, 임영웅 같은 초대형 가수뿐만 아니라 2023년을 기점으로 K팝 공연 전체의 안전체계 수준이 높아졌다.

나는 케이스포돔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산다. 내 취미는 주말에 콘서트장 서성거리기다. 불심검문 나온 경찰처럼 관객 입장이 원활하게 진행되는지, 휴게공간에 온열기구가 설치된 경우 옆에 소화기가 잘 놓였는지 따위를 살핀다. 수시로 티케팅에 도전해 공연도 많이 본다. 내부에서도 역할놀이는 계속된다. 안전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니라,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에는 체계와 자원이 필요하다는 걸 콘서트장 앞을 서성이며 매번 깨닫는다. 그러나 K팝 산업의 선택적 경호 기조 아래, 대중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현장은 안전의 책임이 경호원 개개인의 성미와 판단에 맡겨지고 있다. 팬 대상 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는 근본 이유다.

팬을 업신여기고 안전에 우열을 둬온 K팝 산업의 착각이 값비싼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다. 경제학자 헤르만 지몬은 저서 <이익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익이란) 기업이 이행해야 할 모든 의무를 다한 다음에 남는 잔존 금액”이라 정의했다. 이익엔 의무가 있다. 의무를 다하는 건 이익이 된다. 경호원이 때릴까 봐 걱정하는 팬들이 있는 한 K팝이 수백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들여 구현하려는 환상적이고 쿨한 삶, 다양성과 자기 긍정의 가치는 기만과 모순으로 여겨질 것이다.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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