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파괴하는 정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의 거리두기]상식을 파괴하는 정치

우리는 지금 도덕의 총체적 파괴를 목도하고 있다. 이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니 많은 사람에게 근심 많은 학자의 과장으로 들릴 수 있다. 과장이었으면 좋겠다. 아무도 절대적 가치를 신뢰하지 않는 허무주의 시대에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상식’이라는 게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도덕의 붕괴는 지나치게 불린 말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도덕 운운하느냐고 ‘쿨한’(cool) 태도를 보일지도 모른다. 필요 이상의 감정 소비는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는 ‘쿨하다’의 사고방식은 도덕에 대한 무관심을 오히려 멋으로 여긴다. “이야기 장단에 도낏자루 썩는다”는 말처럼 도덕 냉소주의에 빠져 우리는 도덕이 침식당하는 줄도 모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정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막장 드라마가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 기준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면, 막장 정치는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던 상식적 도덕 기준을 부패시킨다. 언론은 연일 ‘조국혁신당’이 심상치 않다고 보도한다. 이름부터 우리의 상식을 깬다.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특정 정당의 이름에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것은 정당 민주주의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 여기서 조국이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를 가리킨다면 사용할 수 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 해석이 있지만, 이 당명을 보고 조국이라는 개인 정치인이 아닌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자녀 입시비리와 관련하여 1,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이 신당을 창당하고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한 것도 우리의 상식에 어긋난다. 공정과 정의를 말할 자격이 의심되는 사람이 정권 심판의 이름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공정과 정의에 대한 비웃음이다. ‘공정은 무슨 공정, 중요한 것은 권력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상식 파괴의 예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가치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지속할 수 있는 근본 조건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깨진 오늘날 양당제는 권위주의의 온상이 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거대 정당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다당제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존재하는 명목상의 정당이 바로 ‘위성정당’이다. 위성정당은 정치적 이념과 정책도 필요 없다. 국민의 표를 얻어 권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게 유일한 목표이다. 이러한 위성정당은 우리의 민주 정당에 관한 우리의 상식을 파괴하고, 궁극적으로는 제도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

이 땅에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중앙윤리위원회를 열어 비례대표 의원 등 8명에 대한 제명 징계를 의결했다고 한다.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로 의원을 꿔주기 위한 꼼수다. 징계는 본래 부정이나 부당한 행위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징계 사유가 없는데도 징계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의원들이 소속된 국민의힘이 아니라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서 활동하는 게 제명 사유라고 한다. 이런 궤변이 어디 있는가? 당에 해로운 행위를 했을 때 징계하는 것인데 당의 발전을 위한 “희생정신”으로 위성정당에 참여하기 때문에 징계하였다고 한다. 희생정신을 발휘하면 징계당한다는 궤변은 상식을 파괴한다. 이러한 궤변을 아무렇지 않게 듣다 보면 우리는 상식이라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마저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대화와 토론과 협상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정당들이 권력 게임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상식을 파괴하는 전대미문의 현상을 겪고 있다. 전공의가 파업하고, 의대생들이 동맹 휴학하고, 의대 교수마저 사직한다고 한다. 의료 현장의 붕괴로 고통받고 생명을 위협받는 것은 환자와 국민이다.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의사가 환자를 떠나야 하는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의약분업을 위시하여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될 때마다 파업이라는 극단적 수단으로 대응해온 의사 집단이 ‘생명’과 ‘윤리’를 입에 올리는 게 가식처럼 들릴까 두렵다. 자신들을 스스로 ‘노동자’라 칭하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논하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돈’이다. 비급여 진료로 큰 수익을 내는 개원의를 선망하는 사람들이 윤리와 책임을 비웃고 돈과 경제적 부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쿨한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화 시대의 마지막 귀족 신분처럼 군림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 보여주는 도덕 냉소주의가 우리의 마지막 상식을 허물어뜨린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는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이 모든 게 정치 탓이라고 말하면, 그것도 과장일까? 우리가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를 동시에 발전시켰다는 믿음은 이제까지 우리의 자긍심을 북돋웠다. 산업화는 ‘돈’의 문제고, 민주화는 ‘가치’와 ‘품위’의 문제다. 돈은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물질적 여유를 제공하고, 민주화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을 만든다. 물질적 부를 축적하고 확대하려는 우리의 이기심은 사회를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두 집단으로 양극화한다. 반면에 민주주의는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를 완화하여 다양성이 존립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한다. 민주적 가치는 절대적 가치를 신뢰하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상식’이다. 무엇이 공정하고, 무엇이 부당한가에 관해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공유하는 공통 규범이 바로 상식이다. 상식은 글자 그대로 ‘공통 감각’(common sense)이다. 사람들이 타인에 관심하는 대신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져 사적인 공간에 갇혀 있다면, 공통 감각은 사라지고 상식은 붕괴한다.

도덕적 자산 더 파괴될까 우려

상식은 나와 다른 사람을 이어주는 최소의 사회 규범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나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황금률은 인류의 모든 종교와 문화에서 나타난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욕을 하거나 상해를 가함으로써 나의 인격을 훼손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철에 난무하는 정치인의 말과 수사는 이러한 상식을 파괴한다. 정치인은 누가 더 선명하게 선정적으로 욕을 잘하는지 경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당이 “패륜공천”을 했다고 주장하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형수 욕설, 검사 사칭, 대장동 비리 등을 소환하는 식이다. 비전과 정책 대신 상대 당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것이 정치가 되었다. 권력은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는 왜곡된 정치의식은 결국 민주적 상식을 파괴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이러한 상식의 붕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에는 사람들이 쿨하다고 여기는 도덕 냉소주의가 만연해 있다. 도덕과 윤리를 꺼내면, 사람들은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꼰대의 사고방식이라고 비난한다. 어떤 사람이 잘못했어도, 우리는 비난 대신 “그래,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논의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칸트가 여기 납셨네!”라고 풍자한다. 예전에는 어린아이를 보면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덕담을 건넸다면, 요즈음은 “아무나 돼!”라고 말하는 게 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덕적 냉소주의가 이렇게 쿨함과 풍자로 위장되어 유통된다. 관습을 조롱하고, 도덕을 비웃고, 가치를 경시하는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상식이 설 자리는 없다.

적대적 공생으로 부패한 정치가 도덕적 냉소주의와 결합하면,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를 부식시킬 해충이 만들어진다. 상식의 해체는 권력의 독재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지도자가 상식에 바탕을 둔 사회 계약을 훼손하면 사회가 붕괴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준다. 민주화 이전의 전근대 국가가 붕괴할 때는 독재자와 정치인들이 바뀔 뿐 관습과 도덕규범은 변하지 않았다. 반면 민주 국가들은 비록 독재 국가들보다 약간 더 오래 지속될지라도 더 철저하고 더 심각하게 붕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지도자들이 가치와 규범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여 지도자와 정부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상실되면, 민주 국가도 붕괴한다는 것이다. 상식과 도덕을 훼손한 지도자들은 사회를 파멸로 이끈다. 이번 총선을 치르면서 우리의 도덕적 자산이 더욱더 파괴될까 걱정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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