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 시인

올겨울엔 시금치를 자주 무쳐 먹었다. 겨울 시금치나 겨울 무가 맛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렇다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시금치를 자주 먹은 것은 아니다. 포항초 한 단에 4000원이 넘을 때도 있었고 남해 섬초는 꾸준히 3000원대를 유지했다. 싸다곤 할 수 없지만 시금치를 데쳐서 참기름, 담근 간장, 다진 마늘을 넣어 무친 뒤 참깨를 뿌려 먹는 맛의 즐거움 때문인지 가격은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농산물 가격에 내가 좀 둔하기도 하지만, 좀 비싸면 어떠랴, 관대한 생각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농산물 가격은 지난 설 전에 최고점을 찍었다. 그때는 이미 과일에 손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재작년인가, 처가에 갔을 때 처남이 대파를 한 아름 뽑아서 막 떠나려는 우리 차에 실어준 적이 있다. 대파나 양파는 우리 가족에게 거의 필수 식재료이기 때문에 처남에게 미안하면서도 그렇게 마음이 풍요로울 수가 없었다. 사실 명절 귀경길 풍경은 여러모로 흥미로운데 그중 제일은 언뜻언뜻 보이는 다른 자동차의 뒤칸이다. 어떤 자동차는 무얼 그렇게 많이 실었는지 룸미러로는 후방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경제학자들이나 언론에서 좋아하는 국내총생산(GDP)으로는 집계되지 않는 물산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지는 모습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다. 대한민국 근대사는, 한마디로 농촌이 도시를 먹여 살린 시간이다. 문제는 도시가 그 진실을 모르거나 또는 은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도시가 첨단화될수록 그 사실을 더더욱 모른 척한다는 것.

대파값, 여권 ‘민생 무시’ 드러내

난데없이 대파 가격이 정치판을 뒤흔드는 것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치솟는 농산물 가격에 무능과 무관심 일색인 현 정권의 후안무치야 비난받아 마땅하고, 그것을 또 호도해보겠다고 대파 한 뿌리 가격을 들먹이는 데 이르러선 정말 가소롭기까지 했다. 일단 대파를 한 뿌리 단위로 파는 데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우리 동네 가게들에선 그리 팔지 않으니까. 일단 대파를 흔들어대는 것 자체가 아주 무례한 일이다! 그만큼 현 정권이 민생에 무지함을 넘어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농업에 대한 뿌리 깊은 하대를 드러내는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대파 정도는 멱살잡이 하듯 해도 된다는 것일까?).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실보다 더 뿌리 깊은 데에 있는 것 같다. 즉 높은 대파 가격의 원인이 현실 정치에만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착시 현상 같은 것 말이다.

농산물의 흉작이 기후위기로 인한 결과라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 거대한 블랙홀 같은 총선 정국에 이용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현 집권 세력의 무능과 무관심은 그것대로 질타하면서도 그동안 농산물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 진정한 원인은 놓치지 말아야 할 터인데, 상황이 그렇지만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또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왜 농산물 가격이 싸면 쌀수록 좋다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따져 묻는 이성적 태도도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물론 저임금(그것도 불안정하기까지 한) 노동이 고착화된 현실에서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그리 달갑지 않고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부담을 고스란히 농민들이 져야 맞는 것일까? 그동안 농업은 산업화를 위해 많은 희생을 치러왔다. 근대산업문명 자체가 농업과 농토를 훼손, 파괴하면서 전개됐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가깝다. 그 결과가 이산화탄소 축적이고, 다시 이것이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불러와 농업에 타격을 줬음은 잠시만 둘러봐도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나는 산업화, 도시화가 진보라고 인정된 그동안의 시간이 우리의 정신과 내면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 농촌에 사는 ‘할매들’을 가부장제나 자본주의적 빈곤의 피해자로만 보면서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거나, 텔레비전에서 우스개의 대상으로 추락시킨 것도 그런 문화 현상들일 것이다. 이런 경제 지상적인 문화가 농업이나 자연을 이야기하면 보수적이라는 힐난을 받게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땅·농업 지켜온 건 ‘할매들’

그런데 대파 가격이 오르자 화들짝 시끄럽다. 지금이야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농사 자체가 힘들다지만 그 대파를 지금껏 누가 지켜왔는가? 대파는 조선의 데메테르인 농촌의 ‘할매들’이 지켜왔음을 우리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상품경제는 이윤의 원천을 은폐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지와 대지에 속해 사는 데메테르들을 은폐한다.

나는 도시인들이 대파라는 선악과를 정치 공방의 소재로만 소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기후위기’라는 보다 더 근원적인 정치 의제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진실을 알려주는 선악과를 베어 물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껍데기 민주주의’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 ‘껍데기 민주주의’에 취해 살고 있듯이 말이다.

황규관 시인

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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