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바라보는 구도는 대체로 심판론에 입각해 있다. 이에 따라 선거 결과 또한, 현 정부 탄생의 시점에서 출발해 여야의 경쟁 릴레이 간 득점과 실점의 비교 우위로 해석하는 듯하다. 승자독식의 선거가 이런 식의 차악선택의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는 주장은 흔히 볼 수 있다. 주지하듯 두 정치세력이 서로를 심판하며 번갈아 집권해온 것이 우리 정치의 불행이자 현실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심판’이 실현되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2020년 총선을 떠올려본다. 감염병의 유행으로 비닐장갑까지 껴가며 투표했던 2020년 4월,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당 위성정당은 180석을 차지했다. 단독 180석이 갖는 함의는 중단 없는 개혁이었다. 국회의장, 상임위원장 다수를 확보하여 원구성의 주도권을 가졌고 신속처리안건 단독추진이나 필리버스터 중단도 가능한 만큼 강력한 입법권이 부여되었다. 사실상 야당의 견제수단이 사라진 데에 많은 이들은 일하는 국회를 주문하면서도 ‘권력의 분점’을 요구했다. 절대적 우위의 힘이 야당의 무력화가 아닌 여러 위협에 맞서 새로운 사회협약을 창출하기 위한 설득의 힘으로 활용되길 주문했다. 특히 ‘촛불연합’에 기대를 걸던 이들은 미국의 뉴딜연합을 거론하며 팬데믹이 초래한 사회경제적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다수연합 구축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권력의 독점은 더 강화되었다. 적대정치와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막강한 권한은 설득과 타협 없이 자유롭게 행사되었다. 여러 개혁입법은 21대 국회와 정부에 의해 거부되거나 미뤄졌다. 2020년으로부터 2년 뒤, 민주당은 ‘심판’되었고 현 정부가 출범했다. 그리고 다시 2년 뒤, 심판의 시간이 찾아왔다고들 한다.
심판이 우리 정치에 대한 척도이자 민심의 나침반이라면, 심판을 통해 우리 사회는 나아지고 있는 걸까. 우리가 처한 위기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정치와 민주주의의 위기, 전쟁과 폭력 등 모든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뿐 아니라, 모두 그 해결이 시급하고 서로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도대체 어디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지주형)인데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말해지지 않은 채 선거가 종료되고 있다. 넷플릭스 SF 드라마 <삼체> 속의 주인공들은 무려 400년 뒤에나 도래할 위기를 막기 위해 대응단을 구성하고 지혜를 모으지만, 우리는 당장의 위기마저도 외면한다.
내전의 기운마저 감돈다. 새 국회가 온갖 위기에 맞서는 전초기지가 되는 대신 ‘응징과 보복’의 주전장이 될 기세다. 한쪽 세력에 올라탄 일부 진보정치와 진보운동도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입법자의 역할보다는 내전에 관심이 큰 듯하다. 그들이 2년 전에 심판된 세력에게 투항한 것도 거악과의 전쟁이라는 세계관에 기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거가 희망이라면, 그 희망은 번갈아 가며 심판하고 심판되며 집권하는 두 정치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미래를 그리는 이들에게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