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환경보호를 외친다면 모순일까?

김봉석 문화평론가
개발업자에 맞서 3대째 목장을 지키는 존 더튼의 이야기를 그린 <옐로우스톤>.

개발업자에 맞서 3대째 목장을 지키는 존 더튼의 이야기를 그린 <옐로우스톤>.

속초로 여행을 갔다. 근 20년 만이었다. 그동안 동해 바다를 보러 강릉, 정동진, 묵호, 고성 등은 갔는데 속초만 빼놓았다. 예전 속초를 갈 때는 한계령을 굽이굽이 넘어갔는데, 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하니 2시간 조금 넘어 도착한다. 호쾌한 동해가 좋고, 아기자기한 영랑호와 청초호가 함께 있어 더욱 끌리는 도시다. 앞으로 바다, 옆에는 호수, 뒤로 설악산의 어우러짐은 어떤 장소와 비교해도 멋지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속초 등대 옆 영금정으로 향했다. 정자 이름인가 했는데, 바닷가에 깔린 넓은 암반을 영금정(靈琴亭)이라고 한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신령한 거문고 소리 같아서 붙여진 이름. 조선 시대 문헌에 따르면, 당시엔 이곳을 비선대라 불렀다 한다. 밤이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고 노래를 부르며 놀던 곳. 영금정의 정자에 올라 앞을 보니 푸르른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뒤를 돌아보니, 설악산이 드리워져 있다. 아직 산 위의 눈이 녹지 않아 설악의 위용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곳에서 본 설악산은, 이제 망쳐졌다. 영금정과 설악산 사이에 고층건물이 떡하니 놓여 황홀했던 경관이 엉망이 된 것이다. 속초에 올 때부터 위화감이 있었다. 인구 8만 넘는 도시에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곳곳에 솟아 있다. 전엔 못 보던 풍경이다. 모든 게 아파트로 집중되는 한국이지만, 수려한 경관을 해치며 홀로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을 보면 화가 난다. 여의도와 강남 등 일부 지역에 늘어선 고층빌딩은 좋다. 마천루가 빼곡히 들어서 위용을 자랑하는 모습도 아름다울 수 있다. 하지만 고층 아파트가 한국의 모든 도시와 자연에 줄지은 모습은 곧 무너질 바벨탑을 보는 것만 같다.

개발과 발전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 자연을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라 생각지 않고, 첨단 문명을 거부하며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개발과 발전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오직 부의 증가만 목표로 하는 개발은 거부할 필요가 있다. 세상엔 돈을 최상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얼 지킬 건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치의 싸움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걸작 드라마가 있다. 테일러 셰리던의 <옐로우스톤>이다.

<옐로우스톤>의 주인공은 몬태나주 최대의 목장을 소유한 존 더튼이다. 3대째 이어진 더튼의 목장은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스톤’에 위치한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 더튼에게 목장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목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불법도 넘나든다. 시즌 5까지 나온 <옐로우스톤>에서 존 더튼의 적은 부동산업자와 금융회사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부동산업자는 리조트와 골프장, 카지노를 만들려고 한다. 말과 소를 키우는 환경이 파괴되고, 땅값이 오르면 보유세가 늘어나 목장 운영이 어려워진다.

최악의 적은 뉴욕 월가의 거대 금융회사다. 더튼의 목장 부지에 공항을 건설하고,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계획을 세운다. 개발을 하면 일자리가 수천개 늘어나고 막대한 세금을 걷을 수 있다며 주지사를 설득한다. 금융회사는 더튼에게 목장 인수 대금으로 그와 자식들, 손자까지 평생 호화롭게 살 수 있는 막대한 금액을 제시한다. 그러나 존 더튼은 거부한다. 매일 아침마다 집 현관을 열면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이 더 중요하다. 그가 죽으면 자식들은 상속세를 감당 못해 결국 목장 부지 일부를 팔아야 한다. 그건 사후의 일이다. 존 더튼은 3대가 일궈온 목장, 목장을 품어준 자연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존 더튼은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부자이지만, 인간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개발과 발전을 거부한다. 그러나 주 정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끌어들이는 개발안을 받아들이려 한다. 막강한 지역 유지 더튼의 설득도 소용없다. 그러자 더튼은 주지사 선거에 직접 출마한다. 법을 바꾸지 않으면, 행정을 바꾸지 않으면 목장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튼이 옳고, 개발을 원하는 그들이 틀려서가 아니다. 더튼에게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고, 그것은 돈보다 더욱 소중하다. 더튼의 의지는 확고하다. 돈이 아니라 자연이고, 목장이다.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신성한 노동과 신뢰다.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비웃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돈만을 추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돌아보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벗어나기도 해야 한다. <옐로우스톤>을 만든 테일러 셰리던은 인간이 어떤 가치를 향해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크리에이터다. 그의 작품들은 비관적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만, 치열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인간을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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