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가 11년을 넘겼다. 독신으로 사는 이들이 많은 세태를 잘 반영하는 데다 유명인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해서 시청률이 매우 높다. 서울의 1인 가구 비율이 40%에 육박한다고 하니, 새로운 삶의 패턴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식사 때면 왁자지껄 몰려 다니는 풍경이 여전한 대학가에도, ‘혼밥 환영’을 써 붙인 식당이 늘어간다. 혼자 식당에 가는 게 어색해서 같이 먹을 사람을 찾곤 하던 필자 역시 혼밥 횟수가 늘어났다. 가끔은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혼밥이 가능해진 이유 중 하나는, 혼자 있음을 잊게 만드는 스마트폰이다. ‘고독사’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릴 만큼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감은 현대인에게 치명적이다. 그런데 스마트폰 덕분에 혼자 있으면서 혼자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더욱 치명적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 속에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고립되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속 인터넷 세계에도 사람이 있고 소통이 넘친다. 하지만 좁은 취향으로 거르고 가린 이들과의, 쉽게 휘발되고 언제든 끊을 수 있는 관계가 대부분이다. 그 와중에 정작 곁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진다.
세속을 떠나 은거를 꿈꾸곤 하던 옛사람에게도 고독이 문제였을까? 절의로 알려진 동계 정온 같은 선비도 아들에게 보낸 시에서 “아비는 외로움이 병이 되어서 열흘을 끙끙 앓고 있단다”라고 읊을 정도로 고독은 피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나물 뿌리 캐 먹으며 간섭하는 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지내고 싶다고 토로한 주희의 편지가 사랑받아 왔지만, 시골의 학생들을 데리고 책 읽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는 말이 바로 이어진다. 은거의 상징인 거문고와 술 역시, 때때로 찾아주는 벗이 있어야 제맛이다.
‘고(孤)’는 넝쿨에 매달린 오이의 모양으로 홀로 남겨진 자식을 뜻하는 글자다. 하지만 조금만 멀찍이서 다시 바라보면 오이 넝쿨에는 수많은 오이들이 달려 있다. <나 혼자 산다>의 매력은 혼자 사는 집에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로움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곁에 있는 누군가와의 만남이 더욱 소중하다. 홀로 달려 있지만 넝쿨로 이어진 오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