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보수의 등장은 언제일까?

우석훈 경제학자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수여당이 서울시에서 절대다수가 되었기에,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집 큰 어린이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게 왜 폐지됐는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막막하다.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애초에 이런 기본적인 인권 보호는 지자체의 조례로 넘길 게 아니라 헌법에 들어가고, 기본법을 만들었어야 할 일이다. 상위법의 근거가 없으니, 지자체 의회에서 임의로 폐지해도 절차상 방법이 없다. 인권조례 폐지 사건은 아마 22대 국회에서 정식으로 법률이 제정되면서 한때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학생인권법에도 거부권을 행사할까가 절차적으로 남는 쟁점일 것이다. 인권과 같은 선진국 주제는 잠시는 몰라도, 완전히 뒤로 가기는 어렵다.

이는 절차상의 이야기이고, 기어코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고, 없애야겠다는 서울시 보수인사들을 보면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겼다. 인권은 진보 쪽의 의제이고, 그걸 반대하는 게 보수의 입장인가? 한국의 근현대 역사로만 보면 그게 맞아 보인다. 노동현장을 비롯해 보수는 주로 압박을 하는 입장이었고, ‘인권변호사’로 상징되는 진보인사들은 그것을 막는 일을 주로 해왔다. 군사정권 시절에 보수는 인권주의자들을 적, 즉 반체제 인사로 모는 일을 기꺼이 했고, 그 결과 인권변호사 출신이 두 명이나 대통령이 됐다. 한국의 역사는 그렇지만, 과연 그게 보편적인 것일까?

인권은 헌법보다 더 근본적인 힘

공화국을 만들어낸 프랑스혁명을 좌파들만 한 것은 아니다. 귀족과 성직자는 물론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사장들도 다 같이 민중들과 힘을 모아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가 형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것이 바로 인권선언이다. 원칙적으로는 그 인권선언 위에 헌법이 서 있다. 신을 대체한 인간의 권리는 헌법보다 더 근본적인 힘이다. 그래서 인권은 원칙적으로 헌법보다 더 근본적인 권리다. 물론 우리는 그런 역사적 과정을 거쳐 헌법을 만든 게 아니라서 헌법은 국민의 권위 위에 세워져 있다. 인간이 가진 보편적 권리에 대한 개념 대신 국민이라는 개념이 그 자리에 있다. 국민이기 이전에 자연인으로서 인간이 갖는 보편적 권리에 대한 생각이 우리는 약하다. 그래서 별도로 헌법 아래에 청소년인권이나 학생인권에 대한 규정이 없으면, 권리는 물론 보호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공화국의 눈으로 보든 자본주의의 눈으로 보든, 인권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선도해서 만든 바로 그 보수들이 신의 권위 대신에 새롭게 찾은 게 인간의 권리라는 인권 개념이다. 노예제 폐지를 이룬 링컨은 미국의 전형적인 보수이고, 그의 정당은 공화당이었다. 그 시대 미국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이 흑인인권의 맨 앞에 섰다. 쫀쫀하게 학생인권을 규정한 조례를 폐지하는 그런 자세로 미국 보수들이 미국을 만든 게 아니다.

아예 인권이 국가의 근본에 위치한 나라도 있다. ‘전쟁 중 포로의 처우에 관한 협약’은 1864년 제네바에서 만들어졌고, 스위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위스 보수들에게는 이런 정신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1924년 역시 제네바에서 중요한 선언이 만들어졌는데, 그게 ‘아동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이다. 인권에서 출발해, 평화, 중립, 이런 게 스위스 보수의 핵심이다. 이라크 전쟁 때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파병을 추진했는데, 극우파들이 인권과 중립 정신을 모토로 결국 파병을 막았다. 우리나라 보수와는 인권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보수는 북한인권을 이야기할 때를 제외하곤 대체적으로 인권에 대해 반대 혹은 유보적 입장을 갖는다. 한발 물러서서 보면, 한국 보수에게는 적극적 반대와 소극적 반대라는 두 가지 정도만 있지, 소극적 찬성 혹은 적극적 찬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국 보수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이라는 이미지를 갖는다. 반대로 진보는 위선적이라는 이미지에 노출될 위험성이 크다.

반북·경제 다음 보수가 갈 길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보수는 반북 보수와 경제 보수, 두 가지로 구분을 했다. 반북 보수는 태극기가 되었고, 경제 보수는 이명박의 실패 이후 소수파로 몰락했다. 흐름상 지금쯤은 한국에서도 인권 보수가 등장할 때가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이라 인권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더욱 강해졌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인권에 대한 민감성이 더욱 높다. 인권 보수의 등장, 그게 반북 보수와 경제 보수를 뛰어넘는 차세대 보수가 갈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보수는 모든 힘을 모아 서울시에서 학생인권조례를 결국 폐지했다, 이렇게 청소년들에게 자랑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Today`s HOT
트럼프 지지 표명하는 헤일리 오타니, 올스타전 첫 홈런! 오타니, 올스타전에서 첫 홈런!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10주년
쓰레기장에서 재활용품 찾는 팔레스타인들 방글라데시 학생 시위대 간의 충돌
삼엄한 경비 서는 중국 보안요원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세 재개한 바이든
인도 힌두교 전차 축제 트럼프, 붕대 감고 미국 공화 전대 등장 눈부신 호수에 금빛 물결 증세가 부른 케냐 Z세대 반정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