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20여일, 길다면 길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1대 국회가 임기 종료를 20여일 앞두고 있다. 다행히 이달 초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채 상병 특검법, 전세사기 특별법이 처리되었다. 그중 전세사기 특별법은 민생과 직결되는 것으로 진작에 통과되었어야 할 법안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채 상병 특검법도 국민 안전과 관련된 법안임에도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쉽게 통과되지 못했다. 대통령 거부권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그나마 중요한 성과로 기록될 만하다.

하지만 육아, 돌봄과 관련된 남녀고용평등법 등 모성보호 3법과 위기임산부 지원 법안 등 통과되지 못한 민생 법안은 1만6000여개에 달한다. 이 법안들은 이달 29일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물론 21대 국회에는 역대 어느 국회보다 법안 발의 건수가 많았다. 20대 국회에서 이미 2만건을 넘은 법안 발의는 21대 국회에서 2만5170건이나 되었다. 사회가 복잡하고 발전해 갈수록 법안 발의는 많아지게 마련이다. 법안 수가 많다는 것이 지연의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

21대 총선에서 국민은 더불어민주당에 180석이 넘는 의석을 맡겼다. 정쟁으로 비화하지 않는 민생 법안들을 주도적으로 처리했어야 했다. 여당도 물론 야당이 제안했다는 이유로 발목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은 더불어민주당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비록 180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170석을 넘게 안겨 주었다. 조국혁신당과 새로운미래까지 합하면 범민주 진영은 21대 총선에서보다 한 석 많은 184석이다.

총의석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은 패스트트랙을 가능하게 하고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패스트트랙은 상임위원회 재적 위원의 5분의 3을 의미하지만 총의석의 5분의 3을 차지하면 상임위원회 구성에서도 그만한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의지만 뚜렷하다면 민생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의지가 뚜렷하지 않으면 민생 법안 처리가 끝없이 지연될 수도 있다.

정당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지만 선거제도 개혁도 마찬가지다. 민생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되 병폐가 확실한 정치적 법안도 신속히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위성정당으로 문제가 많은 현행 선거제도 도입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 방지법은 끝내 처리하지 않았다. 게다가 비례대표 의석이 한 석 줄기까지 했다.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압도적 승리가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연합 득표율이 26.7%에 불과함에도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의 의석률은 58.3%에 이르기 때문이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의 단맛을 톡톡히 본 것이다. 조국혁신당이라는 변수가 작용하기는 했지만 지지율이 심하게 왜곡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수대표제에 의한 지지율과 의석률의 왜곡이 더불어민주당 승리의 주요 제도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적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이번 총선 승리가 더불어민주당 활동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만 보기는 어렵다.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공천 파동과 여러 차례의 분열이 그 방증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독선과 국민의힘의 편협한 정치에 따른 반사이익에 따른 것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야당 심판론보다 정권 심판론이 강력하게 작용한 것이 그 증거의 하나다.

정권 심판론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는 있어도 의정 활동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 수많은 민생 법안을 처리하고 주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협치를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이달 30일에 개원할 22대 국회의 의정 활동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총선이 끝났으므로 21대 국회 마무리도 평가 대상에 포함된다. 남은 20여일은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길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는 ‘속도와 행동’ ‘성과와 실적’을 강조했다. “머뭇거리다 실기하는 과거의 민주당과는 결별”하고 효능감 있는 의정 활동을 해나가겠다는 포부다. 또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개혁’이라며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과 대장동 50억클럽 특검,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 등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주요 법안을 재추진한다는 결의도 기대된다. 하지만 위성 정당과 심각한 의석률 왜곡을 시정할 선거제도 개혁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올바른 제도가 올바른 정치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왜곡된 제도에서 올바른 정치가 이뤄지기는 더욱 어렵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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