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단어를 기대합니다

심완선 SF평론가

창피한 기억이 있다. 내가 열 살 언저리였던 때, 어느 공터에 있는 트럭에서 ‘어름’을 팔고 있었다. 지나가던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트럭 쪽으로 돌아가 주인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어름은 틀렸어요. 얼음이라고 써야 맞아요.” 아저씨는 웃으면서 자기가 몰랐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덕분에 나는 조금 간질간질하고 뿌듯한 기분으로 집에 도착했다. ‘어름’이 예전에는 맞는 표기였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조금 겸허함을 배웠다. 어린이를 대하는 방법도 약간은 배운 듯하다.

이때 배운 겸허함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SF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되었다. SF의 특징은 낯선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는 단어가 낯선 방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독자는 어렸을 때의 나처럼 ‘내가 아는데, 이거 틀렸어. 내가 맞아’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다. 낯섦은 소설의 배경이 비현실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존 스칼지의 소설 <무너지는 제국>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플로우 붕괴만 아니었다면, 반란도 성공했을 것이다.”

독자는 ‘플로우 붕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맥락상 ‘플로우’는 붕괴할 수도 있는 것이어야 한다. 형체가 고정된 물체여야 한다. 그런데 영어 ‘flow’는 흐름을 뜻하는 일반명사다. 흐름은 형체가 없다. <무너지는 제국>에서 지시하는 대상은 독자가 알지 못하는 무엇임이 분명하다. 이와 유사하게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와일드 시드>의 첫 문장은 이렇다. “도로는 자신의 종자 마을 한 곳을 수습하러 떠난 여행길에서 우연히 그녀를 발견했다.” 자신의, 종자, 마을이라는 단어는 모두 친숙하지만 우리는 이런 식으로 단어를 조합하지 않는다. SF 독서는 모르는 단어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라는 SF 및 판타지 작법서에서(원제는 훨씬 무난하고 심심하다) 올슨 스콧 카드는 숙련된 SF 독자가 어떻게 소설을 읽는지 설명한다. ‘플로우’나 ‘종자 마을’을 만나도 숙련자는 당황하지 않는다. 그게 무엇인지 작가가 뒤에서 알려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독자가 뜻을 알고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낯선 단어를 통해 소설 속 세계에 독자가 조금씩 진입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SF 장르에서 암묵적으로 형성된 퍼즐이고 게임이다.

반면 SF에 익숙하지 않은 비숙련자는 모르는 말이 나오면 당황한다.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비숙련자는 독자가 알거나 적어도 알 수 있는 단어로 소설이 서술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종종 SF를 ‘어렵다’ ‘작가가 글을 이상하게 쓴다’고 느낀다. 자신이 모르는 법칙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대하는 방법을 습득하려면 더 많은 SF를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겸허함은 SF로 다듬어졌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낯선 표현이라도 틀렸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 내가 모르는 맥락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 생소한 사고방식이라도 어림잡아 이해해보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의 모습을 추론하는 것. 그리하여 타인의 세상을 (설령 그것이 허구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내가 SF에서 배운 방법이다.

심완선 SF평론가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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