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뒤풀이가 요란한 가운데 무감하게 잊히는 정당이 있다. 진보정당 운동의 본령인 정의당이다. 지난주 리얼미터 정기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은 이름 없는 ‘기타 정당’으로 분류될 만큼 미미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진보 집권’을 꿈꾼 게 엊그제인데, 믿기지 않는 반전이다. 총선 일주일 전 117명의 지식인들이 녹색정의당 지지를 선언하면서 “녹색정의당이 없는 한국 정치는 상상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여기서 녹색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대체해도 무방할 터이다. 그 상상할 수 없던 것이 현실이 됐다.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이 의석 확보에 실패해 원외정당으로 밀려났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을 기점으로 하면, 진보정당 운동이 20년에 걸친 여정 끝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20년 진보정치 역사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양경규 정의당 의원). 저무는 한 시대를 되짚고, 정의당의 실패를 복기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씨앗을 찾을 수 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0석을 확보해 단숨에 제3당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보수 일변의 국회에 노동자 정치세력화 기수인 민주노동당이 입성한 것이다. “당사에서 국회까지 걸어오는 데 5분이 걸렸지만 노동자의 국회 입성에는 50년이 걸렸다”(당시 노회찬 의원). 반세기에 걸쳐 굳어져온 좌파 부재의 한국 정치 지형을 민주노동당이 전복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국회 입성을 역사적 사건으로 매김하는 이유이다.
원내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비정규직 문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부유세 등 원내 진보정당의 의제와 제안이 시대정신이 되었다. 이렇게 진보정당을 통해 한국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모아져 한때 국회 의석 13석, 당 지지율 20%, 대선 득표 200만표에 달하던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진보적 의제를 정치권에 투영하기 위해 분투할 때,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권리 옹호를 위해 헌신할 때 이룩할 수 있었던 성취다.
그 빛나던 시절을 아득한 과거로 밀어내는, 참담한 좌절이 너무 빨리 왔다.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은 의석을 단 1석도 얻지 못해 원외로 밀려났다. 비례 정당득표율은 정당 해산 기준을 간신히 넘은 2.14%에 머물러 의석을 배정받지 못했다. 진보정당의 얼굴인 심상정 의원은 지역구에서 2등도 아닌 3등으로 낙선했다. 진보 유권자들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받은 최악의 결과다. 22대 총선에서 진짜 망한 정당은 녹색정의당이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내외(內外)의 여러 가지 패인이 거론된다. 우선 정체성 혼란, 민주당과의 관계에서 ‘2중대’ ‘배신자’ 프레임 사이 갈팡질팡한 태도, 선거 노선을 둘러싼 분열, 노회찬·심상정 이후 인물 부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외인(外因)으로는 모든 의제를 집어삼킨 압도적 정권심판론, 위성정당, ‘지민비조’를 내세운 조국혁신당 돌풍 등이 지목된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0석 사태’를 초래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진보정당으로서 선명하지 못한 정체성이 치명적이었다. 언제부턴가 노동 중심성과 현장을 방기하고, 과도한 정체성 정치와 여의도 고공정치에 치중하면서 노선이 흐리멍덩해졌다. 오죽하면 “민주당보다 덜 진보정당”이란 소리를 들었을까 싶다. 선거를 앞두고 비례 1번 국회의원이 탈당해 반페미니즘 보수정당으로 넘어갔다. ‘못 믿을 정당’이란 이미지가 두텁게 쌓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조국혁신당이 정의당을 대체할 순 없다. 정의당이 원외로 밀려났지만, 진보정치의 가치와 필요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총선 기간에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단체로 녹색정의당에 입당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누군가는 들어줘야 하잖아요. 녹색정의당은 꼭 필요한 정당입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처럼 정의당이 필요한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여전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대변자 역할을 할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광야로 나온 정의당 앞에 놓인 환경은 척박하다. 몰락에 가까운 총선 득표율이 가리키는 바가 있다. 재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고 노회찬 의원의 ‘6411번 버스 연설’에 답이 들어 있다. 이제 여의도를 벗어나 밑으로, 현장으로, 민중 속으로 내려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