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과학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어린이들의 안부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논문이 게재되었다. 그동안 기후위기를 주시해온 이들은 2030년까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상승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논문에 따르면 이미 1.7도를 넘어섰고 현재 추이대로 간다면 2030년이 되면 3도까지 상승할 것이라 한다. 이토록 뜨거워진 지표면에서 지금의 어린이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미안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간 기성세대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해봤자다. 1962년, <침묵의 봄>을 통해 레이첼 카슨은 인류가 화학독극물로 풀을 죽이고 벌레를 죽이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하는 삶의 방식을 지속한다면 그 죽음의 사슬로 새들도 멸종해 새의 노래소리 한마디 없는 봄을 맞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1972년, 많은 연구자들이 <성장의 한계(The Limits of Growth)>란 보고서를 통해 경제성장주의의 한계와 폐해를 알렸다. 이런 흐름하에서 1970년대 초, 산업주의와 상품시장 중심의 삶의 방식을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부상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주류 체제가 선택한 길은 또 ‘개발’이었다. ‘지속 가능’이라는 말로 포장은 했지만 기조는 여전했다. 1992년, 유엔도 이 흐름에 동참해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생각은 마치 그런 것이 실재하고 그렇게 하면 기후위기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퍼뜨려 왔다. 한편, 2014년, 유엔 산하 정부 간 기후위기 논의체인 IPCC가 발표한 5차보고서는 지구온난화가 1980년 이후 급속히 전개되었고 그 원인은 무엇보다 경제성장이었음을 재차 확인했다. 1980년은 신자유주의와 함께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시기와 겹친다. 이에 앞선 2004년 발간된 <성장의 한계: 발간 30년차 보고서>는 경제성장주의를 의문시하지 않는 모든 대안적 시나리오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문명붕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2030년경엔 재생불가능한 자원으로, 2040년경엔 환경오염으로, 2070년경에는 식량위기로 인한 인류문명이 붕괴할 것이라는 경고다. 소위 산업화된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과개발국들은 세계 에너지의 75%를 사용하고 기후위기를 불러온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0%를 발생시키고 있다. 예외가 아닌 한국은 2018년까지 탄소 배출 증가율 1위였으며 202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량 8위의 나라였다.
1970년대 이후에도 끊임없이 경제성장을 해온 선진국들의 복지지수는 내내 정체상태에 있다. 한국사회는 현재 치료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도 여전히 증가일로인 암 발생률, 언젠가부터 평범한 질병이 되어버린 우울증의 만연, 극도로 높은 자살률, 사회 양극화와 빈곤층 급증 등 경제성장만을 맹신해온 끝에 받아들게 된 사회적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심각한 산불, 폭염, 폭우, 산사태, 폭설, 냉해가 번갈아 반복되면서 이미 봄이 와도 벌과 나비를 보기 힘들어졌다. 그런 가운데, 지난 4월, 2020년 시작된 ‘청소년 기후소송’과 2022년 5세 이하 영유아 40명 등이 참여한 ‘아기 기후소송’ 등 4건의 기후소송이 공동으로 4년1개월 만에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을 가졌다. 가정의달 5월, 어린이를 식구로 둔 이들은 어떤 식으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옳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