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기술’과 정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의 거리두기]‘경청의 기술’과 정치

사람들은 자기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엄청나게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을 한다. 구텐베르크 문자 혁명 이후 글로 소통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제대로 듣는 능력이 쇠퇴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읽을 때 집중해서 읽지 않는 것처럼 들을 때도 건성으로 듣는 일이 흔하다. 실제로 듣는 것은 사람의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그 어느 때보다 올바른 청취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부부싸움도 서로 제대로 듣지 않아서 일어나며, 정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는 정당들이 상대방의 말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면 극단적 갈등과 대립으로 이어진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느 곳에서도 더 많은 경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꽉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영수회담을 했다. 서로의 말을 듣고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에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서로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이재명 대표는 퇴장하려는 취재진을 불러 세우고 미리 준비한 원고를 주머니에서 꺼내 본격적인 발언을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비판과 요구가 담긴 이재명 대표의 작심 발언을 묵묵히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발언을 예상했을 윤석열 대통령이 정말 제대로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할 말은 다 했다는 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준 이재명 대표가 이후 이어진 대담에서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후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두 사람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상대방의 말은 제대로 듣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 제대로 듣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더 성공적이고 행복하며 세상을 더 잘 이해한다는 연구가 많이 있다.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대체로 다른 사람에게 열려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7대륙의 최고봉에 오른 최초의 등반가이자 한동안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가장 나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진 텍사스 석유 기업가 딕 배스에 관한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어느 날 그가 비행기를 타고 북미 대륙을 가로질러 가고 있는데 그의 옆에는 모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말을 걸고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그 낯선 사람에게 자신과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가 아직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착륙 직전이었다. 낯선 남자는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제 이름은 닐 암스트롱입니다.” 딕 배스가 말을 많이 하는 대신 옆의 사람에 관심을 가졌다면 달 탐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경청의 핵심은 신뢰 구축

주의 깊게 듣는 것이 꼭 멋진 경험을 한 주요 인사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자녀, 파트너, 판매원과 고객, 의사와 환자, 정치인과 시민 등 다양한 소통 상황에서 ‘제대로 듣기’는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듣는 경청(傾聽)은 본래 머리를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 낱말 ‘리스닝’(listening)에는 듣는 것과 귀여겨듣는 것의 차이가 없다. 이에 반해 독일어로 경청하다는 낱말은 ‘듣다’에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가 앞에 붙는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 사람을 향해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면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경청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면 일을 더 잘 기억하고, 더 잘 처리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경청할 때 점점 더 신뢰하게 된다.

경청의 핵심은 신뢰 구축이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뇌과학자 유리 해슨(Uri Hasson)은 경청할 때 우리의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실험 대상자에게 TV 시리즈에서 발췌한 내용 중 일부를 보여주고 다른 청취자에게 전달하게 하고 나서 내레이터와 청취자의 자기공명영상을 촬영했다. 스캔 결과,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우리의 뇌 활동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청취자의 신경 반응이 서로 고정되고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이런 현상을 ‘신경 동조’라고 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경청하여 실제로 서로를 이해했을 때 그들의 뇌 반응은 결합되어 유사해진다는 것이다.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좋은 의사소통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공통 기반을 갖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불신의 악순환 깨려면 잘 들어야

듣는 일은 사실 우리가 매일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일상 활동 중 하나이다. 그래서 건성으로 들을 경향이 크다. 이에 반해 주의를 기울여 제대로 듣는 경청은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경청은 세 가지를 전제한다.

첫째, 경청은 깨어 있는 내면의 태도를 전제한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는 생각이 분산되지 않고 말하는 사람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화자의 표정, 눈빛, 몸짓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한다.

둘째, 잘 듣는 것은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상대방이 말을 하는 데 반응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것은 전혀 듣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단순히 듣는 것은 수동적이지만, 잘 듣는 것은 능동적이다. 대화는 어쩌면 상대방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경쟁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반응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반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교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있다고 이야기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말을 듣고 ‘나도 이런저런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교대로 반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경청하는 사람은 아마 어떤 고통인지 공감하고 물으며 상대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반응할 것이다.

셋째, 경청은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한다. 대화가 관심을 끌기 위한 경쟁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방식을 바꾸려 노력한다. 그도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도록 유도하거나 강요한다. 대화 상대자가 왜 그런 방식, 내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이해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수 없다. 그는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그만큼 우리와는 다른 믿음과 행동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이에 반해 좋은 경청자는 가능한 한 편견을 버리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개방성을 보여준다. 자신을 신뢰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이런 개방성을 보여준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경청하면 우리 사회에는 갈등보다 화해가 더 많아질까?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이다. 우리 국민은 정치인들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탄하지만, 국민의 요구와 이해관계는 다를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는 상충해서 정치적으로 중재되어야 한다. 모든 요구를 경청할 수는 없지만 듣기만 하고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듣기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충족할 수 없는 요구만 지속적으로 생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는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우선순위를 합리적으로 결정하여 사람들이 이 우선순위에 동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듣는 횟수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양’의 문제이고, 경청의 결과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질’의 문제이다. 국정을 설명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별로 없다면, 우리는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결정적인 것은 듣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이다. 경청의 목표는 신뢰 구축이다. 기자회견을 했는데도 무언가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연 그가 경청하였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듣기는 물론 양과 질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문제이다. 듣는 횟수가 늘어나 많이 듣다 보면 저절로 소통이 잘되어 신뢰가 증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대립하다 보니 서로 경청하기보다는 자기 말만 내뱉는 청각 장애를 겪고 있다. 신뢰의 부재가 서로의 말을 듣지 못하게 만들고, 이것이 다시 상호 불신을 초래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이 악순환을 깨려면 우리는 우선 서로 자주 만나고, 잘 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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