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2

서정홍 산골 농부

‘부자’란 재산이 많은 사람이다. 얼마나 재산이 많으면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은 있다’는 속담까지 있을까?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살기도 아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한 사람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더구나 요즘 부자는 3년이 아니라 30년, 300년을 일하지 않고도 먹을 것이 남아돈다고 한다.

오늘 아침 TV 뉴스를 보던 마을 어르신이 푸념을 늘어놓으신다. “아이고, 저 썩을 놈은 큰 죄를 짓고 감옥에 가도 무신 걱정이 있겠노.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은행에 넣어둔 이자가 불어난다 안 카나.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아이가. 그라이 우찌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겠노.”

한낮에 장터에서 만난 어르신이 푸념을 늘어놓으신다. “남들은 내가 농사 많이 지으니까 부잔 줄 알겠제. 껍데기뿐이여. 농기계 빚 갚느라고 세월 다 보냈네그려. 오늘도 트랙터가 고장 나서 수리점에 갔더니 말일세. 고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좋겠다는구먼. 또 은행 빚을 얻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이 태산 같네그려.”

해질 무렵에 들녘에서 만난 선배 농부가 푸념을 늘어놓는다. “농사꾼은 ‘빚도 재산’이라지. 내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농사짓고 산 건 아니잖아. 다 함께 먹고살자고 한 짓이지. 그러니까 빚도 재산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니까. 하하하. 그건 그렇고 지구온난화 탓으로 논밭에 병해충이 득실거려 독한 농약 치느라 이젠 몸도 다 망가졌다네.”

선배의 쓴웃음 소리가 저녁 밥상머리까지 따라 들어왔다. ‘농촌 어르신들과 선배들이 부자로 살지는 않아도, 빚에 쪼들리지는 말아야 청년들이 농부가 될 꿈을 꾸고 살 텐데….’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저녁밥을 먹었다. 어쩐지 오늘 하루는 참 고달프기만 하다. 농사일로 지친 몸이야 자고 일어나면 풀리지만, 지친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 뒷산에 참꽃(진달래)이 피었다 지고, 황매산에 개꽃(철쭉)도 피었다 졌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개꽃을 보려고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떼를 지어 산으로 올라갔다. 도시에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찾아왔는지 차를 타고 천천히 20분이면 올라갈 수 있는 산인데, 200분을 기다려도 갈 수가 없어 돌아가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산골 어르신들은 애가 탔다. “아이고, 우짜모 좋노. 먼 데서 짬을 내서 왔는데.” “야야, 요즘 개꽃 볼 짬이 오데 있노. 농사일이 얼매나 바쁜데. 밥 묵을라 카모 논 갈아야제. 고추 모종 심어야제. 오이고 가지고 옥수수고 지금 심지 않으모 사람 입에 들어갈 끼 하나도 없다 아이가.” “그래도 사람이 많이 찾아오니까 사람 사는 거 같구먼.” “어릴 때는 묵을 끼 없어 참꽃을 따 묵으며 핵교 다녔는데…. 요즘은 오데로 가나 묵는 기 천지삐까리라, 온 산에 묵지도 못하는 개꽃이 피어 난리법석이구먼.”

농촌 지역에서도 가끔 부자가 눈에 띈다. 농사지어 부자가 된 사람은 거의 없다. 대도시로 나간 자녀들이 출세한 덕에 저절로 부자가 된 사람이다. 부자들은 여행을 가도 비행기를 타고 부자 나라로 간다. 옷을 입어도, 음식을 먹어도, 부자 나라에서 나온 것을 입고 즐겨 먹는다. 부자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다만 바쁜 농사철엔 꽃구경도 여행도 티 내지 않고 다녔으면 좋겠다. 너무 무리한 부탁인가?

서정홍 산골 농부

서정홍 산골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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