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또 하나의 시험대 ‘최저임금’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3년 최저임금인 시급 9620원을 받지 못한 근로자가 3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미만율은 국제 기준으로도 높다. 산정 방식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가장 최근에 산출한 최저임금 이하 근로자 비율은 2021년 우리나라가 19.8%로 멕시코(25.0%)에 이어 2위였다. 조사 대상 OECD 25개국 평균 7.4%의 2.7배 수준이었다.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이 통계를 산출하고 배포한 단체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다. 게다가 발표 날짜는 최저임금위원회가 2025년 최저임금 심의 전원회의를 열기 며칠 전인 이달 16일이었다. 현행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이렇게나 많은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더 올릴 수는 없다는 논리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정계에서 민생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다. 대통령 취임 2주년을 기해 정부는 무엇보다 민생을 챙기겠다고 다짐하는 현수막을 곳곳에 내걸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은 민생 중의 민생이다. 그런데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민생의 중심에 자본과 기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최저임금 미준수는 범법 행위다. 엄정하게 단속하거나 지원을 통해 준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범범자가 많다고 단속법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범법자를 비호하거나 양산하는 꼴이 된다. 최저임금이 과연 최저생계비를 보장할 수 있는 금액인가도 따져 봐야 한다. 2023년 개인회생절차에서 인정하는 월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125만원이었고, 2인 가구는 207만원이었다. 시급 9620원이면 주 5일 하루 8시간씩 꼬박 일해야 166만7467원을 벌 수 있다. 2인 가구에게는 턱없이 부족하고, 1인 가구로서도 생계를 꾸리는 것 외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은 40여만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를 충당해야 한다. 2024년 최저임금은 2023년 대비 2.5% 인상된 9860원이다. 마찬가지로 거르지 않고 일해서 받는 임금이 170만9413원이다. 2024년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약 133만원, 2인 가구 약 220만원이다. 나아진 게 없다.

그럼에도 경총은 2001년과 비교해 작년 소비자물가지수와 명목임금이 각각 69.8%, 159.2% 인상되는 동안 최저임금은 415.8% 상승해 물가의 6배, 명목임금의 2.6배로 올랐다고 주장한다. 20여년 전 통계를 입맛에 맞게 선정한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의 최저임금이 생계임금도 되지 않는 기아임금 수준이었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2인 가구 중위소득의 32%로 산정하는 최저생계비는 생계급여 선정 기준이다. 적정 생계 수요가 아니라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최저임금은 최저생계비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에서 책정됨으로써 생계급여가 제외되는 합법적 가난이라는 것이다. 이 합법적 가난은 노동시장의 경쟁을 강화해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을 양산하는 악순환의 토대가 된다.

내년 최저임금은 1만원을 넘길 수 있을까. 1만원은 이미 7년 전인 20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제 1만원은 상징적인 숫자일 뿐이다. 1만원이 아니라 1만원대로 진입해 더 높게 책정돼야 한다. 여기에도 물가가 반영되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나라 먹거리 물가 수준은 OECD 35개국 중 3위다. 실제 양대 노총은 1만2000원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윤석열 정부에서 최저임금의 적정 인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을 보면 회의적이다. 사실상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공익위원의 선정이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른바 ‘주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을 낸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 출신이다. 당연히 노동계는 반발해 권 교수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그 외에도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활동한 공익위원은 두 명이나 더 있다. 한국노총의 주장에 따르면, 위원 9명 중 8명이 편향돼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질서다. 조정자는 강자와 약자가 대립할 때에는 약자에 힘을 실어 균형을 맞춘 다음 조정하고, 대등한 대립일 때에는 중립을 견지하며 양보와 타협을 끌어내야 한다. 강자와 손을 잡고 약자를 억압하거나 한쪽 편을 들어 다른 한쪽을 배척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강자 카르텔의 독재가 아니면 카르텔 형성을 위한 협잡이다. 올해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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