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
플랫

플랫팀

여성 서사 아카이브

LG U+의 스튜디오 X+U와 MBC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그녀가 죽였다> 포스터. MBC 제공

LG U+의 스튜디오 X+U와 MBC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그녀가 죽였다> 포스터. MBC 제공

또, 그녀가 죽었다. 20대 남성 최모씨는 지난 5월6일,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했다. 그렇게 한 명의 여성이 남성에게 또 죽은 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U+모바일tv엔 LG U+의 스튜디오 X+U와 MBC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그녀가 죽였다>가 공개되었다. 이은해, 엄인숙 등 여성들이 저지른 유명 강력범죄 사건 다섯 가지를 소개하는 시리즈로, 공개된 첫 에피소드에서는 고유정 사건을 다뤘다. 여성의 죽음에 대한 소식과 죽이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 이 간극엔 회피하기 어려운 모순적 긴장이 존재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2023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최소 138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교제관계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한 해에 이토록 많은 여성이 이토록 많은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나라에서 여성이 살해한 일부 사건을 그러모아 ‘그녀’라고 특정해 호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왜곡된 재현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방영을 앞두고 진행한 제작진 서면 인터뷰에서 인정했듯 “첫 보도자료가 나가고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그럼에도 “성별을 떠나서 어떤 피해자라도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혹은 그 범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앞으로 좀 더 디테일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 필요성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는 게 제작진의 변이다. 그리고 지난 10일, U+모바일tv에 선 공개된 고유정 에피소드 1화가 MBC를 통해 공개됐다. 보고난 솔직한 심정은, 세상에 도움 되지 않는 물건이 심지어 지상파를 통해 방영됐다는 것이다.

‘애교 섞인 말투’ 등 과도한 디테일
AI로 고유정 목소리 재현 ‘자극적’

미안한 얘기지만 <그녀가 죽였다>는 2019년 방영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 ‘아내의 비밀과 거짓말-고유정은 왜 살인범이 되었나?’ 편에 자극적인 디테일만 가득 덧붙인 수준이다. 가령 <그알>에선 고유정이 전남편 살해 후 김포의 한 마트에서 방진복 등을 구입하다가 덧신을 서비스로 받고 미소 지은 것을 강조하고 방영 후 언론 역시 이를 충격적이라 보도했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죽였다>에선 유족 법률대리인을 통해 살인 이후에 고유정이 펜션 주인에게 ‘감사합니당’, 아들에게 ‘엄마 청소하고 올게용’이라 “애교 섞인 말투”를 썼다는 디테일을 추가한다. 분명 고유정은 공감 능력이나 도덕 감정이 부족한 악인이자 끔찍한 범죄자이며 조금이라도 이해나 연민을 구할 구석은 없다. 다만 이미 엽기적 과정과 범죄자 신상이 다 공개된 된 사건을 5년이 지난 현재 다시 소환해 그저 이러저런 사소한 디테일을 덧붙여 소름끼치는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것이 대체 이 사건을 새로이 이해하고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데 어떤 기여를 할지 조금도 알 수 없을 뿐이다.

<그녀가 죽였다> 제작진이 자사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인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자랑한 단독 보도의 역할이 의심스러운 건 그래서다. 1화에선 고유정의 자필 메모와 범행 후 사건 현장을 찍은 고유정의 사진이 단독으로 공개되었다. ‘신상공개 가만 안 둔다’ 같은 메모로부터 그의 뻔뻔함을, 현장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긴 것으로부터 전문가가 지적한 “완전범죄가 가능할 것이라는 과도한 자존감”에서 비롯된 “범행의 퇴행”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고유정의 죄의식 부재는 수없이 반복해 소개됐고, 계획범죄에 대한 그의 과신과 태연함 역시 고유정의 사이코패시함을 방증하는 단골 소재였다. 제작진은 “여성 범죄의 특이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고 “여자인가 남자인가가 중요하다기보다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여성 범죄에 집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밝혔지만, 단독 보도를 통해 여성 범죄의 맥락을 이해할 새로운 통찰이나 사회적 원인을 밝혀내기보단 반복되어 소비되는 고유정의 캐릭터와 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증폭할 뿐이다. 여성 범죄의 “남성 범죄에 비해서 계획적이고 잔혹한 면”을 강조하지만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가 친밀한 관계에서의 살인에 대한 사례들을 연구한 <이웃집 살인마>에선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배우자보다 작고 약하기 때문에 공격을 당하면 방어하기가 어렵”고 “그 결과 학대받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배우자가 취했을 때나 자고 있을 때처럼 취약해졌을 때 살인”하느라 정당방위 적용이 어려워지는 부조리에 대해 말한다. 여성 범죄에서의 계획범죄와 고의성을 고유정 같은 악랄함으로 환원하는 건 외려 제작진이 강조한 연구의 디테일을 왜곡한다. 앞으로 <그녀가 죽였다>가 단독 공개할 엄인숙의 사진, 이은해 사건 피해자가 계곡으로 다이빙하기 전 찍힌 동영상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문이다. 물론 엄인숙이 미인이라는 것이, 이은해 사건에서 범행 직전의 순간을 직접 확인한다는 것이 어떤 악의 심원에 다가간 기분을 줄 수는 있다. 그리고 이런 기분이야말로 제작진이 여성 범죄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청자를 괴리시킨다. 더 자극적이고 은밀한 디테일을 알게 되어 사건의 본질에 접근했다는 잘못된 감각.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범죄자 목소리 재현이라는 연출 방식은 상당히 역겨워진다.

고유정이 피해자인 전남편과 함께 찍은 생일 축하 홈비디오로 시작되는 <그녀가 죽였다> 1화는 그가 아이에게 자신을 지칭한 “엄마는”이라는 말소리를 반복 재생하며 AI로 학습시킨 뒤 고유정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재현한다. “고유정이고 서른일곱입니다.” 피의자 신문조서에서의 발언이다. 이어 말한다. “저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의견서에 있던 문구다. 이 도입부는 <그녀가 죽였다>의 방향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마치 범죄자가 사건에 대해 진술하는 걸 듣는 듯한 경험은 너무 직접적이라 소름끼친다.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이나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 현장을 누비는 기자 혹은 PD는 사건을 매개하는 전달자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반면 내레이션을 AI가 재현하는 고유정 진술로 대체한 <그녀가 죽였다>는 마치 매개와 해석을 거치지 않고 범죄에 대한 사실을 그대로 마주하는 듯한 경험을 준다. 하지만 두 개의 서로 다른 문서를 더해 마치 고유정의 자기소개처럼 구성한 AI 목소리가 그러하듯, 그것은 사실의 조각을 이어붙인 재구성이다. 마찬가지로 고유정의 범죄 증거들과 범행을 부인하는 그의 목소리를 교차 편집해 그의 뻔뻔함을 강조하는 것 역시 제작진의 선택이자 재구성이다. 재구성과 편집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과연 이런 구성이 사건 이해와 연구에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알 수 없거니와, 가공되지 않은 사건의 실재를 제공하는 척하며 사건의 팩트들로부터 여성 범죄의 특수성을 해석하고 매개해야 할 제작진의 책무를 교묘히 지워버리는 사기를 치는 게 문제다.

작년 138명 친밀한 남성에 죽임
여성 살인 5건 강조…현실 왜곡

이쯤 되면 제작진이 주장한 선한 의도가 실패했다기보다는 그냥 사후적으로 덧붙인 변명이나 거짓말 혹은 자기기만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무엇보다 굳이 여성 범죄를 따로 다룬 이유를 말하면서 동시에 “성별을 떠나서” 봐달라는 당부부터 모순적이었다. 그토록 수많은 남성 범죄들 사이에서 고유정과 이은해의 이름이 안 좋은 의미로 상징적 지위를 갖게 되는 것부터 이미 성별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이다. <그녀가 죽였다>에선 엄마로서 아이가 있던 장소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제주도 지역사회의 민심을 다뤘다. 그 분노를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2021년 동거녀의 20개월 된 딸을 성폭행하고 학대해 살해한 계부의 사건에 대해선 고유정처럼 가해자 이름이 알려지지도, 어떻게 아빠로서 그럴 수 있느냐는 비난이 따르지도 않았다. 모성의 배반에 유독 공분의 가중치가 붙는 것이 성별과 무관한 일일 수 있을까. <그알>에서 남성들이 저질러온 수많은 흉악범죄를 소개했으면서도 유독 고유정 사건이 가장 충격적이었다던 진행자 김상중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죽였다> 말미 피해자의 사체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폐쇄회로(CC)TV 장면에 대해 담당 형사는 “저런 여자가 있구나, 세상 참 무섭다”고 했고 제작진은 이 문구를 자막으로도 강조했다. 김상중이 느꼈던 충격도 그것 아니었을까. 저런 ‘여자’가 있다는 것. 수많은 남성 범죄자는 성별과 무관한 범죄자 일반이지만, 여성 범죄자는 저런 ‘여자’이자 천륜을 어긴 엄마로서 충격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끔찍한 악인이란 것과 별개로 고유정과 이은해라는 이름이 수많은 남성을 제치고 악마성의 상징적 기호가 되는 과정은 성별을 떠날 수 없으며 실은 그것이 <그녀가 죽였다>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이름 모를 그녀들의 죽음엔 한없이 익숙해지면서.

▼ 위근우 칼럼니스트

TOP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