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주치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어깨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관절 전문병원’부터 갔다. 특정 자세를 취할 때 통증이 온다고 하자 의사는 MRI를 찍으라고 했다. 비싸서 좀 망설였지만 찍었다. 진단은 회전근개파열이었다. 의사는 수술해야 한다면서 다짜고짜 수술 일정을 잡고 가라고 했다. ‘회전근개’라는 단어도 처음 듣는 나에게 병의 원인 혹은 수술 이외의 치료 방법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채로 집에 돌아온 나는 ‘회전근개파열’을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라인상의 산더미 같은 정보 속에서 갈피를 잡기란 힘들었다. 나는 동네 정형외과에 또 갔다. 그 의사는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비급여 항목인 DNA 주사를 권유했다. 뭔가 개운치 않아서 이번엔 재활의학과를 찾아갔다. 여기서도 수술보다 보존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처방은 초음파를 찍고 도수치료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역시 모두 비급여 항목이다. 나는 결국 대학병원에 갔다. 몇달 기다려서 어렵게 만난 교수는 “회전근개파열 맞고요, 지금은 수술하지 않아도 되고요, 6개월 후에 다시 봅시다. 전공의가 가르쳐주는 밴드 운동 열심히 하세요”라고 짧게 말했다. 그날 의사를 만난 시간은 채 3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왜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의료쇼핑하러 다녀야 했을까? 어깨 조금 찢어진 것을 가지고 왜 대학병원까지 가야 했을까? 3차 의료기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좋은 것일까? 그런데 그렇게 병원 순례를 다니고도 왜 나는 ‘슬기로운 어깨 질환자 일상생활’을 위해 매번 인터넷에 “회전근개 환자 스트레칭을 해도 되나요?” 등을 검색해야 할까? 의대 증원 문제가 의료개혁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최근 상황을 보면서 이런 묵은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쿠바에는 ‘콘술토리오’라는 마을진료소가 있다. 마치 온몸의 말초신경처럼 동네 구석구석 퍼져 있는 그 1차 진료기관에서는 가족 주치의가 평균 500~700가구를 돌보는데 가난한 나라 쿠바에서는 이런 공공 주치의 제도를 통해 지역사회에 밀착된 예방적 의료실천을 수행한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도 가족 주치의 제도를 운용한다. 감기나 비염, 고혈압, 당뇨 같은 일상적 질환은 동네의 ‘패닥’(패밀리 닥터)을 통해서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의료비는 두 나라 모두 거의 무료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십년 전에는 소아과, 내과 등 동네 병원이 일종의 가족 주치의 노릇을 했었다. 엄마들은 큰아이에 이어 작은아이까지도 한 소아과에 계속 데리고 다녔고, 세월만큼 의사와 환자 혹은 보호자 사이에 친밀감과 신뢰감이 쌓였다. 의약분업 전 동네 약국은 사람들이 들러서 수다도 떨고 아프다고 호소도 하는 동네 사랑방이었다. 어떤 병은 털어놓기만 해도, 누군가 잘 들어주기만 해도 낫는다.

공공병원 고작 5.7%, 고사 직전의 지방의료,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피안성, 정재영’, 전공의 번아웃, 4000만명이 가입해서 제2의 국민보험이 된 실손보험, 개인 의료비 부담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 누구나 말하는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의료 현실이다. 대안은 공공병원 확충과 1차 의료 개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얼마 전 친구 모임에서는 단초점이냐 다초점이냐가 이슈가 되었다. 백내장 수술 이야기였는데, 단초점의 경우 건강보험으로 가능하지만 다초점 수술은 수백만원이 드는 비급여 항목이라고 했다. 최근 퇴행성 백내장과 황반변성 초기 진단을 받은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라도 실손보험에 가입해야 할까?

하지만 앞으로는 어깨와 눈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 기관도 점점 망가질 것인데 그때마다 분절적으로 전문의를 찾아가서 맥락 없는 비급여 처방을 받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필요한 것은 실손보험이 아니라 점점 늙어가는 내 몸의 온갖 증세와 징후들을 함께 살펴보고 함께 겪으면서 또 적절한 안내도 해줄 수 있는 동네 병원과 주치의 아닐까? 내 몸과 삶을 통합적으로 계속 지켜봐주는 주치의, 나도 그런 주치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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