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장님은 거저 되겠나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내 친구 김민아 노무사는 “단 한 번도 사측을 대리한 적 없는”, 즉 평생 노동자 편에서 일하고 싸운 사람으로 부고 기사에 기록되었다. 한 줄로 묘사하라면 나도 이 표현을 떠올렸겠으나, 실상 그가 세상을 본 시각은 더 넓고 깊었다고 부연하고 싶다. 일례로 그는 신생 스타트업 대표들을 대상으로 노동법 강의를 한 후 무척 흐뭇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교육이 많아져야 해. ‘좋은 사장님’이 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니까!”

그는 노동자를 위해서 숱하게 싸웠지만, 모든 자본가와 사장들이 악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궁극적으로 노동자와 사장 모두 자기 일을 사랑하고 서로 좋은 관계를 맺는 일터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일터는 그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생 씩씩했던 민아는 병세가 심해지던 즈음 상담이 힘들다고 했다. 싸워도 싸워도 끝이 없는 현실이 그를 더 지치게 했던 것 같다.

지금 둘러보니 현실은 더 엉망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전년보다 12% 늘었다. 최근 기사만 봐도 사례들이 쏟아진다. 한 공공기관 관리자는 자신의 욕설을 녹음한 직원을 고소하면서 “사무실은 사적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공공기관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노동당국도 인정한 사안에 이행강제금을 내면서 불복 중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직원을 괴롭힌 사장과 그 아들은 직원이 뇌출혈로 사망한 뒤에야 처벌을 받았다.

가장 뜨거운 이슈는 ‘개통령’ 강형욱씨 회사 일이다. 증명이 어려운 내부 사정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어 요즘 말로 ‘중립기어’를 놓고 지켜보려 했으나,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해명 영상에서 스스로 밝힌 내용만 봐도 강씨는 고용에 필요한 기본 지식이 없었다. CCTV와 메신저로 직원을 감시하면 불법이라는 점도 몰랐고, 기본급과 인센티브를 받으며 수년간 재직한 훈련사가 피고용자에 해당하는 줄도, 퇴직금을 줘야 하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개별 사례보다 문제인 것은 그렇게 모르는 게 많았다는 사실이다. 직원들이 퇴사하지 않고서는 무엇도 말할 수 없는 경직된 조직문화가 존재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주의에 관하여>의 저자인 경제학자 로버트 달은 아무리 뒤져봐도 ‘기업이 온전히 소유주만의 것’이라고 할 만한 법적·철학적 근거는 없다고 했다. 사장이라고 조직을 자기 내키는 대로 운영해선 안 된다. 엄연히 고용에 관계된 법이 있고, 노동의 최저선을 지키는 국가의 역할이 있다. 노동자들은 근로조건을 높여달라고 목소리 낼 권리가 있다.

한국 사회는 기본을 무시하는 고용자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까? 조직 관행을 거부하고 권리를 챙기는 젊은 노동자들이 ‘MZ사원’ 이미지로 희화화되곤 하지만,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조직문화를 개선하지 않는 기업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대기업들부터 빠르게 변하고 있다. 역사가 민주주의의 우월함을 증명했다면 국가만이 아니라 기업도 그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김민아 노무사가 바라던 일터는 많아지고, 모르는 게 많던 사장님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만 남게 되지 않을까.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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