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를 맞이하는 자세

김보미 전국사회부 차장

20여년 전 고국을 떠나 싱가포르에 일자리를 찾아서 온 인도네시아 여성은 주 6일 일하며 월 50만원 정도를 받아 절반을 집에 송금하는 일상을 이야기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1시에야 끝났던 집안일, 고무장갑 없이 설거지를 하다 손은 매일 부르텄고, 잠은 다른 가족들이 신발을 벗어 놓는 현관에서 자야 했다.

그의 직업은 가사관리인이었다. 최저임금을 비롯한 법적 보호에서 제외돼 고된 환경을 살았지만 다른 여성들의 상황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단체를 만들어 노동권을 주장했던 인도네시아 ‘왕언니’다. 2016년 현지에서 만난 그는 “자선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평등을 말하는 것”이라며 “(본국에) 일자리가 없어 구걸하러 온 거 아니냐는 시선이 변화를 어렵게 한다”고 했다. 10년이 돼가는 과거의 취재를 떠올린 것은 오는 9월 그와 같은 필리핀 출신의 가사관리사 100명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오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1970년대 이후 여성의 사회 진출, 호황을 맞은 건설 경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웃 동남아 국가에서 젊은 노동자를 대거 유입했다. 이후 인구 10명 중 4명이 영주권자를 포함한 외국인이고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멜팅포트’ 국가가 됐지만 직업과 임금, 거주지 등의 차이는 확연했다. 모두 같은 주민은 아니었던 셈이다.

한국도 다양한 인종과 출신의 주민 구성이 지역사회만의 일은 아니다. 서울도 전체 인구의 4.7%(약 44만명), 이미 시민 21명 중 1명이 외국인이다. 주민의 10% 이상이 외국인인 자치구도 4곳이나 된다. 외국인 주민의 자녀는 10년 전보다 무려 83% 이상이 늘었다. 다문화 포용을 위한 정책이 필요해졌다.

육아 부담을 줄여 급락한 출생률을 반전시킬 열쇠로 외국인 일자리 개방이 떠올랐지만 간병인과 숙박·음식점업 등 내국인만으로는 인력이 부족해진 업종은 많다. 문제는 그들이 얼마나 싼 값에 많은 일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효율성 분석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다문화·다인종 사회를 살아갈 준비가 됐는지가 더 큰 관건이다. 달리는 일손을 메워줄 노동력을 넘어, 일상을 공유할 주민으로서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돌봄·가사노동에 대한 왜곡을 만들 수 있는 ‘저임금 프레임’이 아무렇지 않게 거론되는 분위기가 걱정되는 이유다.

아버지가 파독 광부였던 이유재 튀빙겐대 한국학과 교수는 외화를 벌기 위해 이주한 외국인을 언젠가 떠나갈 ‘손님’으로 여긴 이민 정책으로 독일은 사회 통합에 실패했다고 분석했다(경향신문 5월20일자 21면).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을 환영하고,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사회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정 규모의 경제를 이뤄낸 국가는 모두 저출생·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이민 유치 경쟁을 불렀고, 많은 국가가 지난 10년간 외국인 인재 유입을 2배 이상 늘렸다. 이제는 이들의 정착률을 높이기 위한 고민이 본격화된 시점이다. 한국보다 앞서 ‘기회의 땅’으로 불린 국가에서 인력 송출국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때, 이주노동자들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를 재고해야 한다.

김보미 전국사회부 차장

김보미 전국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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