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고마운 초대장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무조건 밀어!” 경찰 간부의 명령이 들려왔다. 방패를 든 경찰들이 산 중턱에서 주민을 밀어내며 순식간에 길을 냈다. 한전 직원들이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들어갔다. 산길이 되었던 경찰들은 다시 공사 현장의 울타리가 되었다.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현장에 있던 내가 경찰에 채인 것도 찰나였다. 2013년 10월이었다.

겹겹이 선 경찰들 사이로 끌려간, 불과 10m도 되지 않는 거리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었다. 울창하고 고즈넉한 숲길이 있었고 터무니없는 고요가 있었다. 다가올 위험에 불안해하며 흔들리는 눈동자도, 내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며 꼭 다문 입술도, 누구도 다치지 않길 바라며 쓸어내리는 손길도, 온기를 나누며 서로 기대는 어깨도, 그곳엔 없었다. 평화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게, 연행보다 당혹스럽고 분통했다. 소름 끼치게 서늘한, 내 것은 아닌 평화였다.

그것은 공익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국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이라며 계획을 밀어붙였다. 누구의 어떤 이익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2013년 5월 한전은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밀양 송전탑 공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 후 대규모 경찰력이 동원되어 공사 현장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제압했다. 한전이 말한 ‘대화와 설득’은 없었다. 송전선은 북경남에서 끝났고 2020년 송전선 이용률은 14%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지금껏 변명도 없다. 공익은 거짓말이었다.

“밀양은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가리키는 또 다른 고유명사가 되었다.” 동료들과 함께 만든 <밀양을 살다> 서문을 이렇게 써두었는데, 책이 인쇄되어 나온 날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모두가 ‘국가의 부재’를 목격한 사건이었다. 두 달 후인 2014년 6월, 밀양에서 행정대집행이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동안 현장으로 간 해경은 30명도 되지 않았는데, 경찰 2100명을 동원해 주민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국가의 존재’ 또한 투명했다. 밀양이 한 시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라면 둘은 다른 것일 수 없었다. ‘국가’가 거짓말인 시대였다.

대통령이 두 번 바뀌었지만 국가는 그대로다. 탈원전을 말하던 정부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을 재개했고, 이어 들어선 정부는 핵발전이 기후위기 대응책이라며 더 짓자고 말한다. 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는 국가폭력을 공식 인정했으나, 당시 밀양경찰서장이던 김수환은 현재 경찰 서열 2위 치안정감이 되었다. 한전에 대해서는 ‘시장형 공기업’이라 권고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경찰과 공조할 때는 국가의 일이라더니 폭력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에는 기업이라고 불러준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밀양을 살고 있다. 하지만 밀양은 거짓말에 속아 사는 시대의 이름이 아니다.

“내가 싸우지 않다가 이걸 봤으면 얼마나 후회했겠나.” <밀양을 살다>에 담긴 주민 구술기록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말이다. 송전탑이 결국 들어섰지만 주민들은 싸운 걸 후회하지 않았다. 속아 당하는 것이야말로 후회할 일이므로. ‘밀양’은 거짓말인 국가에 지지 말자고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시대의 이름이다. 국가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핵발전의 위험을 고발하고, 저항하는 주민의 목소리를 소음으로 치부하는 국가의 폭력을 고발하고, 경찰이 지키는 평화는 공공의 것이 아님을 고발하는 목소리다. 그래서 밀양을 사는 것은 밀양 주민만이 아니다. 부정의에 맞서 싸우는 모든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6월8일, 곳곳에서 밀양을 사는 이들이 ‘다시 타는 밀양 희망버스’를 띄운다. 10년 전의 행정대집행이 패배의 기억이기만 하다면 밀양 주민들이 우리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탈핵 탈송전탑’은 진실을 마주하며 정의로 길을 내자는 부름이다. 곱씹을수록 고마운 초대장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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