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열전>은 5명의 자객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전저와 섭정은 자신을 알아준 이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장렬하게 죽는다. 예양과 형가의 경우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암살 시도와 죽음에 이르는 맥락은 같다. 그런데 첫 인물 조말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조말은 춘추시대 노나라의 장군이었다. 제나라와의 전쟁에서 세 번이나 패했지만 노나라 군주 장공은 그를 끝까지 신임했다. 그 신임에 보답하려 조말은 제환공과 노장공이 협정을 맺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환공에게 비수를 들이대 땅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상황 종료 후 분노한 환공은 약속을 깨려 했으나 소탐대실을 경계하는 관중의 조언으로 약속을 지킨다. 위협으로 목적을 달성하긴 했지만, 조말을 자객이라 할 수 있을까?
<자객열전>의 절정인 형가는 실패한 자객이었다. 상대가 진시황이었기에 그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연나라 태자 단은 형가에게 진시황 암살을 의뢰하면서, 일단 위협하여 목적 달성을 시도하고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죽이라고 했다. 진시황은 제환공과 시대도 성격도 다른데 조말처럼 하라고 요구한 태자 단의 어리석음, 실패하고 이를 핑계로 삼은 형가의 무능함이 훗날 비난의 빌미가 되긴 했지만, 조말 이야기는 형가 이야기로 나아가기 위한 사전 포석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오늘날 킬러는 주로 영화 속에 존재한다. 묘사가 잔혹하든 근사하든 코믹하든 간에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사마천의 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판을 의식한 듯 사마천은 이들의 열전을 쓰는 게 허망한 일만은 아니라는 근거로 “의지가 분명하고 자신의 뜻을 속이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들었다. 환공의 약속을 받은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간 조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안색과 음성으로 돌아왔다. 조말을 자객에 넣은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진시황의 위용 앞에서 비수를 숨긴 지도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는 형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뚜렷한 목적과 흔들림 없는 마음, 그것이 빚는 비장한 아름다움. 언제부턴가 잊고 잃어온 무언가를 향한 사마천의 묘한 향수를, 자객 이야기와 함께 다시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