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석 출판평론가

지난 4월 말 종영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최고 시청률 24.85%를 기록하며 세인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제목과 달리 여주인공보다 남주인공이 눈물을 더 많이 흘리긴 했지만, 오히려 그 절절한 눈물에 팬들은 더 열광했다고 한다. 사전 정의에 따르면 “눈물샘에서 분비되는 액체 형태의 분비물로 눈을 보호하고 청결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 뿐이지만, 살다 보면 눈물엔 여러 가지 정황이 있다. 때로 슬퍼서, 종종 기뻐서 눈물짓는다. 반가워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 눈물의 정황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삼국지>의 주인공 격인 유비는 눈물로 자기 세상을 열어간 사람 중 하나다. 황건적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후한(後漢) 조정은 무능했다. 그래서 눈물 흘렸다. 의병을 조직해 적잖은 전공을 세웠지만, 비록 황제의 후손일지언정, 당시로서는 듣보잡이라 공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또 눈물지었다. 유비의 가장 빛나는 눈물은, 아무래도 삼고초려(三顧草廬) 당시 제갈공명 앞에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해달라며 흘린 눈물일 것이다. 공명은 제 뜻을 다 펼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내놓으며 그 눈물에 화답했다.

한날한시에 죽기로 맹세한 동생 관우와 장비가 비명횡사하자 유비는 눈물을 흘렸다. 복수를 다짐하며 오나라로 향했으나 무명의 적장 육손에게 대패하고, 그 자신 병을 얻고 작은 백제성에 몸을 의탁했다. 병이 깊어진 유비는 공명을 불러 뒷일을 부탁한다. “내 아들을 잘 보필해달라. 하지만 그릇이 작으면 그대가 스스로 황제가 되어 나라를 이끌라”는 유비에 말에 공명은 한없이 눈물 흘렸다. 고굉지력(股肱之力), 충정지절(忠貞之節) 등의 말을 앞세웠지만, 그 말들보다 더 크게 말하는 것은 공명의 눈물이었다. 혹자는 유비가 일생일대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고도 하지만, 어쨌든 유비는 눈물로 세상을 얻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에도 눈물은 적잖이 등장하는데, 대개 스스로의 처지를 아들딸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부모들의 한(恨) 때문이다. 한편으론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그들의 어떤 선택으로 인해 당할지도 모르는 화(禍) 때문이기도 하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서사를 이끄는 한 축인 염상진은, 할아버지가 ‘낙안벌 토호 최씨네의 가복’이었고, 아버지 염무칠은 최씨네서 머슴살이를 했다. 아버지는 온갖 냉대와 고난을 이겨내고 아들을 사범학교에 보냈고, 선생으로 입신시켰다. 염무칠이 아들에게 보일 수 없어 속으로 흘린 눈물은 강을 이루고도 남았을 일이다.

염상진의 대척점에 서 있던 김범우는 좌와 우의 갈림길에서 고뇌한 지식인이었다. 징용으로 전장에 끌려갔다가 탈출한 그는 미국 특수부대 OSS에서 각고의 훈련을 받았지만, 갑작스러운 종전으로 다시 포로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좌도 우도 그의 민족적 자각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한때는 혁명이라는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지려 했지만, 그걸 막아선 것은 어머니란 이름의 눈물이었다. 시대를 잘못 만난 게 어디 김범우뿐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숱한 사람들이 시대와 불화하며 눈물 흘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 ‘눈물’ 하면 우리는 ‘진정성’이란 말을 떠올린다. 유비와 공명의 눈물이 그랬고, 염상진의 아버지, 김범우 어머니의 눈물이 그랬다. 하지만 보통의 세계에서 우리는 진정성 없는 눈물, 즉 악어의 눈물을 숱하게 경험한다. 따뜻한 위로의 말처럼 들리지만 실상 배제와 차별의 언사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세상 모든 사람이 백현우처럼 눈물짓지 않아도, 그 진정성만큼은 통하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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