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가 29일 막을 내렸다. 또 한 번의 국회 종료를 앞두고 언론과 시민단체 등은 앞다퉈 입법실적과 의정활동 등수를 매겼다. 하나같이 양적 평가다. 법안 발의 건수, 본회의 통과율, 미처리 건수, 상임위 출석률 등 양적 지표로 성적을 매긴다. 물론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의정활동을 공천 기준으로 삼았기에 새삼스러운 성적표는 아니다. 공천 기준도 양적 수치에 초점을 맞추고,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평가도 양적이니까 법안 발의 남발은 고쳐지지 않는다. 악순환이다.
의원입법 발의 건수는 계속해서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제18대 때 1만건을 넘기더니 제21대에서는 무려 2만6000건에 달한다. 역대 최고치다. 물론 사회가 변화하고 과학 기술 발전이 상상을 초월하니 필요한 규범이 늘어나고 개정해야 할 법률 조항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정부의 ‘청부 입법’ 관행이 많아졌고, 법안 발의 건수가 공천을 좌우할 의정활동 평가 항목에 포함되니까 그런 것이다. 하지만 거의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했거나 자동 폐기되었다. 제21대 법안처리율은 40%를 밑돌아 역대 최저치다.
법안 발의 이유나 목적, 형태도 천태만상이다. 현행법이나 기존 법률안에서 자구 몇개 고친 법률안, 표절법안, 유사한 법안을 재활용한 법률안, 여러 개의 개정 규정을 잘게 자른 살라미 법률안, 법안의 필요성이나 다른 법률과의 관계 고려 없이 건수를 노리는 ‘묻지 마’ 법안 발의, 의원들끼리 서로 법안에 도장을 찍어주는 ‘품앗이 발의’ 등등. 이러니 처리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위헌 결정을 받은 법률도 생겼으니, 입법부 권위는 추락 중이다. 까다로운 정부발의 절차를 우회해 청탁받은 국회의원이 발의한 청부 입법도 부지기수라니 권력분립은 온데간데없고 민주주의는 후퇴 중이다.
입법의 홍수 시대다. 기술 발전과 사회변화는 더 많은 규범과 입법을 요구한다. 기존의 법률과 법제로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입법자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적극적 입법 활동을 기대한다. 그래서 법안 발의 건수가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입법을 서두르다 보니 부실·졸속입법이 늘어나는 데 있다. 기존 법규와 중첩되거나 체계적으로 충돌하는 법안도 있다.
입법 절차도 부실하다. 입법과정에 실무와 학계 전문가의 참여가 미흡하거나 형식적이다.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 공청회 등의 절차가 있지만, 시간상으로 촉박한 상황에서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은 여론과 시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졸속입법이 적지 않다. 그래서 제·개정 법률이 시행될 때 비로소 다양한 이해관계의 상충이 드러나는 일도 있다.
부실·졸속입법으로 인한 폐해를 막고 더 나은 법, 더 올바른 법을 제·개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입법의 양적 팽창은 질적 수준을 낮추기 때문에 건수보다 내용과 질을 높이는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1인당 대표 발의 건수를 제한하는 ‘입법 총량제’를 제시한 당도 있었다.
국회에서 이미 논의를 시작한 바 있는 ‘입법 영향분석 제도’가 좋은 방안이다. 법률안이 통과되어 시행될 때 예상할 수 있는 사회 전반적 영향을 객관적·과학적인 방법으로 예측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분석을 기다릴 시간이 없는 경우라면 입법에 대한 사후 검증과 평가는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사전 및 사후 입법 영향평가는 규범의 합리성·효율성, 입법과정의 효율성·투명성을 확보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위축시키는 제도가 아니라 오히려 입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방안이다. 제22대 국회가 ‘제21대 국회 시즌2’가 되지 않으려면 개원하자마자 입법 영향분석 제도를 도입 시행해야 한다.